<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라는 오스트리아작가가 쓴 장편소설이다.
일단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메일이 책 내용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런 서간체 형식의 국내 소설로는 작가 김다은의 <훈민정음의 비밀>과 <이상한 연애편지>라는 책이 있다.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즐겨 읽는가 하는 것은 개별적인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부분이라 모든 분들께 강력추천하기에는 망설여짐이 있다.
그러나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어 온 서간체 소설이 내겐 한결같이 풍성한 즐거움을 선사했기에 내 취향과는 상당히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중 특별히 내 감정의 현을 건드리며 얄궂은 설렘으로 뒤척이게 만든 책이 바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라는 책이었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비릿한 슬픔 같은 것이 훅 끼쳐왔다.
분량도 크게 부담 가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도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미덕(?)을 갖고 있어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여운이 남는 책은 쉬 덮질 못하는 법이다.
대개 길고 긴 대하소설을 읽거나 아니면 굉장한 감동을 주는 글을 읽은 후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래도록 책을 덮지 못했다.
어쩌면 개운치 못한, 미련이 남는 결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결말 때문에 쿨하게 책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결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스토리를 간략하게 정리해야겠다.
이야기는 여주인공인 에미라는 웹다자이너가 한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려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라이크’와 ‘라이케’를 혼동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에게 메일이 전달된 것이다.
처음에는 실수로 시작되었고 다분히 장난기 섞인 가벼운 기분으로 진행되던 이메일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묘한 감정으로 치닫게 된다.
언어심리학자인 남자 주인공 레오의 재치 있는 글 솜씨와 자상한 유머감각 등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 에미는 마치 한발 한발 내디딜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에 빠지듯 레오에게 이끌린다.
하지만, 에미는 결혼한 유부녀이다.
유부녀라고 하면 진부한 통속소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야기는 뜻밖의 반전들을 동원하면서 신선하게 전개된다.
자세한 스토리는 앞으로 읽을 독자들을 위해 이쯤에서 멈춘다.
결말을 말하지 않았기에 내가 원하는 결말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밝히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사랑에의 갈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절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남편과의 만남 그 후로 단 한 번도 가져지지 않았던 야릇한 설레임.
내 심장 어딘가, 그 언제쯤부턴가 박제처럼 굳어버린 그 달뜬 감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향한 아주 정당하고도 떳떳한 사랑과는 다른, 결코 더 이상 숨 쉬어서는 안 될 그런 감정이 놀랍게도 부스스 먼지를 떨고 일어났다.
온전한 정신이 있는 주부라면 일부러 금지된 사랑을 소망할 턱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운명의 장난에 걸려들어 지탄받을 사랑으로 질척거리는 이들을 간혹 보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런 인연을 만들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나는 나를 대신하여 에미를 강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어찌 그런 나를 온전하다 할 것인가.
허허 참,
서로에게 존경과 사랑으로 충실했던 무던한 부부를 응원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온전하다 믿고 있게 만들었으니 나는 이미 이 책의 마법에 단단히 걸려들고 만 것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