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있다.
예쁘고 착한 아이이다.
어릴 때는 동생이 예쁠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었다.
어쨌든 나이도 세살 아래고 해서 동생은 내게 간혹 억울한 시달림을 당하기도 했다.
난 비교적 다른 사람들에겐 순하게 대하고 양보도 잘하는 무던한 사람인데 유독 여동생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두살 위 오빠는 맏이의 권위를 남용했기에 그 밑에서 나는 꼼짝도 못한 편이다.
여섯 살 아래 남동생은 나이 차도 제법 있고 또 말 잘듣는 귀염둥이라서 내가 엄마처럼 아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문제의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예쁜 얼굴에다 욕심도 있고 해서 주위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나는 그런 눈부신 동생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얄밉기도 했었다.
나는 욕심이 없었다.
대개의 장녀들이 그렇듯 나도 비교적 나 자신보다 가족 생각하는 맘이 앞섰다.
돈이 생기면 엄마께 드렸다.
그러나 동생은 돈이 생기면 예쁜 필통에 예쁜 필기구 같은 것들을 사며 욕심을 부렸다.
냉장고에 맛있는 것은 잘도 찾아 먹었다.
나는 게으르기도 했지만 그렇지가 못했다.
그러면서 억울했다. 엄마 아빠 힘드신데 돈이 생기면 저금이나 할 일이지, 저렇게 낭비를 할까 하며 혼내기도 자주 했다.
그래서 내 특유의 희생정신이 여동생에겐 발휘되지 않았다.
예전에 엄마가 청소를 시키고 외출하신 날이다.
둘다 일하긴 싫어했다.
그래도 동생이 하기 싫다고 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방이 셋이고 마루가 있었다.
아무래도 마루 청소가 힘들게 느껴졌다.
동생에게 말했다.
-언니가 방1, 방2, 방3을 모두 할테니 넌 마루 한개만 달랑 해라. 언니는 방을 쓸고 닦고 또 먼지도 털고 이것저것 치우고 할게 태산같지만 그래도 오늘은 언니가 특별히 희생해주마.
이 말을 짧게 표현하면 방은 언니가 할게, 네가 마루 청소해라 였다.
하지만, 방은 불이 들어와서 따뜻했고 마루보다 좁아서 오히려 덜 힘들었다.
그러나 짧게 표현하면 동생도 분명히 방청소를 하겠다고 우길 것이었다.
그래서 말장난을 한 것이다.
동생은 어리석게도 얼굴이 환해지며 언니야 고맙데이 라고 했다.
고맙긴...흐흐흐
여동생은 그러면서도 겁이 많았다.
아버지는 화를 잘 내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일단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르면 회초리를 들고 호되게 나무라셨다.
맞고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맞는 것은 싫었지만 어떻게 감히 그걸 거부할 수 있나.
그러나 동생은 달랐다.
아버지가 매를 들면 얘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다.
그러다가 아주 기막힌 타이밍을 맞춰 들어온다.
아버지 화가 적당히 가라앉아 너무 심하게 하지 말걸 그랬나 하고 생각하실 딱 그 시점에 동생은 배시시 나타난다.
난 죽어도 그런 짓 못했는데.
그런데다 나보다 공부까지 잘했다.
항상 임원을 맡았고 따라다니는 남자얘들도 많았다.
그런 동생이 사실은 자랑스럽고 뿌듯했었다.
대견해 하는 맘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 한켠 서러움이 생겨났다.
아버진 쟤만 예뻐하셔.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동생보다 내 편일 때가 더 많았는데 그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동생은 요리도 잘했다.
부모님이 며칠 어딜 다녀오셔도 우리 4남매는 즐겁기만 했다.
만화도 실컷 보고 텔레비전도 맘대로 보고 게다가 여동생이 해주는 맛있는 반찬은 입까지 행복하게 했다.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것과는 색다른 맛.
당연히 동생은 우쭐했다.
그럼 언니인 나는?
설거지 등 뒷처리하느라 마냥 바빴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들 입이 심심했을 것이다.
갑자기 동생이 일어나더니 맛있는 부침개를 해주겠단다.
나는 빈둥대며 게으름 부리고 싶었던 날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눈치를 주신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옆에서 거든다.
자글자글 기름흐르는 고소한 부침개.
다들 동생칭찬에 입이 마른다.
나도 맛있게 실컷 먹는다.
설거지는.
끙...
힘든 몸 일으켜 싱크대를 향한다.
설거지는 칭찬받지 못했다.
아버진 특히 동생을 예뻐하셨다.
애교도 잘 부리니 귀엽기도 하셨을것이다.
속으로 그랬다.
그래도 나중에 보세요.
내가 효도 더 잘 해 드릴 거예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동생은 조금씩 언니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어쩜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좀 그렇게 변했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리고 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세월이 갈수록 제 눈에 언니가 예뻐보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동생과 비교가 안될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보니 언니도 나름대로 볼만해졌기 때문이다.
동생친구들이 나만 보면 동생에게 저런 언니 둬서 좋겠다고 했단다.
저런 언니란 아주 어른스런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날리며 다정다감한 모습의 언니를 말한다.
실은 그런 모습을 연출해 낸 것이었다.
교양을 갖춘 것처럼 말도 하지않고 미소만 머금으며 고개를 우아하게 끄덕여주는...
아직 고등학생인 동생 친구들에겐 긴 파마머리 나풀거리는 커다란 언니가 어지간히 예뻐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의 동생은 키도 작은데다 뚱뚱해져서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나를 달리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많이 겪은 것처럼 언제나 심각하고 진지한 척 하니 더더욱 주눅이 들어 언니가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생은 여전히 욕심이 많았고 언니와는 달리 운명은 동생 편이 되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