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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며느리


BY 선물 2004-01-13

감기가 좀처럼 나을 줄을 모른다. 하루 정도 푹 쉬면 거뜬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번 감기는 끈질기다. 그렇다고 아픈 핑계 대고 마냥 자리보전하며 누워 있기에는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내 자리가 너무나 막중하다. 가족들이 집안 일을 도와 줌에도 불구하고 내 몫의 일은 또 따로 있기에 결국은 구부정한 모습으로 집 안 이 곳 저 곳을 헤집고 다니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내 얼굴이 몹시 볼썽 사나울 것 같다. 평소에는 내가 하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막상 집안 일을 도맡은 주부인 내가 시름시름 기운 잃고 앓기 시작하니 어느 새 집안 꼴도 엉망이고 분위기도 함께 빛을 잃어 간다.

감기를 앓는 사이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렸다. 그런 며느리의 모습이 차마 보기 안쓰러우셨는지 연로하신 어머님도 적이 애태우신다. 평소에 밥 힘 하나로 살던 며느리가 한 끼 양도 못되는 음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을 보시고는 드디어 한 말씀 꺼내신다.
"달걀이라도 두어개 해 먹거라. 뭐든 잘 먹는 게 바로 약이다. 병원에도 갔다오고 약도 먹었는데도 계속 낫지도 않고... 그저 먹는 것 이상은 없으니까 입맛이 없더라도 억지로 먹어야 한다."

사실 달걀에 관한 한 며느리인 나는 많은 설움을 갖고 있다. 결혼 후에 언젠가 내 손으로 내가 먹을 달걀을 후라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신 어머님이 노골적으로 언짢은 기색을 내 비치시는 것이었다. 정작 며느리가 불쑥 젓가락을 대기 조심스러운 갈비나 회 같은 음식을 먹을 때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시지 않던 어머님이셨는데 겨우 달걀 하나 때문에 요즘 세상에 며느리에게 못 먹는 설움을 안겨 주시다니 참으로 황당하고 서운한 마음이 되었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달걀이었지만 막상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식탐이 나던지 그깟 이백 원도 채 못 되는 달걀에 대한 내 간절함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서나 이백 원도 채 못 되는 달걀이지, 어머님께는 그저 단순한 먹거리로서의 달걀이라는 의미 그 몇 곱절은 될 만큼 깊은 상징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사실 나와 어머님과의 그런 생각의 차이는 제법 많아 보인다. 그 한 예로 어머님은 지금도 아버님이나 남편 앞에 놓인 음식상만 `상'이라 일컬으신다. 여자들은 원래 상에 앉아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지낸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여태까지도 어머님께는 여자들의 음식상이 `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젓가락질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교육받기까지 하셨으니 그런 어머님의 인생 속에 녹아 있는 불합리한 생각들에 대해 내가 마냥 원망의 마음만을 갖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일흔 여덟이 되신 어머님. 어머님도 어쩌면 당신 나름대로는 날아가는 세월의 변화를 따라 가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열심히 뜀박질 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 젊은 며느리인 나보다도 더 많이 개화되신 부분도 있으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몇 고정된 생각들은 끝내 변화되지 못한 채 박제된 관념이 되어 평생 끌어안고 살아가시는 것이다.

달걀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박제된 고정관념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참으로 가난하고 굶주렸던 시절을 딸로서, 또 며느리로서 살아오신 어머님께는 달걀이란 것이 너무도 멀고 높은 곳에 놓인 그림 같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저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을 그 때, 달걀은 참으로 귀하고 또 귀한 먹거리였을 테니까...
한 때 어머님은 당신 손으로 직접 병아리를 닭으로 길러내 하루에 십 수 개나 되는 달걀을 얻은 적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때조차도 어머님 몫으로 돌아갈 달걀은 따로 없었다고 한다. 시어른들과 남편, 그리고 5남매의 입으로 들어가기에도 바빴던 달걀을 차마 당신 입으로 가져 갈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어쩌다 친정 식구들이라도 오게 되면 며칠동안 달걀을 모아서 충분한 양을 삶았는데 그런 때나 되어서야 어머님도 마음껏 드셨다고 한다. 그 때 어찌나 맛있게 드셨는지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는 친지들은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님이 삶은 달걀을 아주 좋아하시니 자주 해 드리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달걀이 흔해진 지금도 통 드시질 않는 편이다. 후라이는 비린내가 나서 싫다 하시고 삶은 것은 퍽퍽해서 싫다 하신다. 그러면서도 귀한 손님들이 오면 다른 반찬들이 즐비한데도 불구하고 굳이 달걀 후라이를 해서 상에 내 놓아야만 제대로 대접한 것 같은 개운함을 가지시니 그것으로 볼 때 아직도 어머님께는 달걀이 더없이 귀한 음식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 귀한 달걀을 지금도 차마 못 드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판에 감히 며느리가 시어머님 앞에서 대 놓고 달걀 먹는 모습을 보시게 되니 그 마음이 결코 편하실 리 없으셨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듣는 이에 따라 참으로 기가 막히게 생각될 수도 있으나 어머님 살아오신 한 생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납득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그런 어머님께서 이제 며느리에게 달걀을 먹으라고 먼저 권하시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 작년부터였다. 그 때도 감기로 고생할 때였다. 감기가 너무 오래 낫지를 않아 결국은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건강이 많이 안 좋게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좀은 울적해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침을 굶고 나간 나를 위해 어머님께서 손수 차리신 밥상이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식탁 앞에 앉는데 순간 내 눈길을 끌었던 반찬이 있었으니 바로 하얀 접시 위에 동그랗게 놓인 달걀 후라이 두 개였다. 사실 그 얼마 전에 남편이 나를 위해 달걀 후라이를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머님께 너무 눈치가 보여서 그냥 직설적으로 어머님 생각을 여쭤본 적이 있었다. 어머님은 아들이 며느리에게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솔직히 좀 싫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을 때는 얼마든지 해 먹어도 좋다는 말씀도 함께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님이 드시지 않는 한, 무리해서 내가 내 손으로 해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해서 먹고 싶은 만큼 달걀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어머님이 손수 해 주신 달걀 후라이를 앉아서 받아먹게까지 되었으니 정말 세월의 변화만큼 어머님도 엄청난 변화를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은 다른 면에서도 많이 변하셨다. 예전에는 집안 일을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을 못 마땅해 하셨는데 이제는 어머님이 먼저 아이들에게 엄마를 도우라고 가르치신다. 언젠가는 안방에서 아이들과 어머님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리를 듣고 궁금하여 슬쩍 가 보았더니 엄마를 아끼고 위하라는 말씀을 계속 하고 계시는 중이셨다. 남편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이젠 며느리 편이 되어 주실 때가 더 많으시다. 아이들 때문에 속을 끓이면 똑같은 마음이 되어 나를 위로해 주신다. 사실 어머님이 시어머님이기 때문에 힘이 들 때도 많지만 이젠 그보다 내게 힘이 되어 주실 때가 점점 더 많아져 간다. 어느새 나도 어머님도 서로를 조금씩 기대는 마음이 되어 가는 것이다.

닭은 알을 품어 귀여운 병아리로 태어나게 만든다. 알을 품는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생명에 가까워 보이고 미움은 죽음에 가까워 보인다. 닭은 알을 따뜻하게 품는 사랑행위로 새끼에게 생명을 준다.
나는 항상 어머님의 자애를 존경했다. 그 속에서 사랑을 먹고 반듯하게 자란 어머님의 자녀  분들이 내 눈에도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님 당신 자녀에 대한 사랑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머님의 그 자애가 남의 자식이었던 며느리에게도 조금씩 느껴진다.

어머님은 나에게 달걀을 먹으라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받아먹는다. 사랑이 된 달걀을 감기로 껄끄러워진 입으로 냉큼 받아먹는다. 어머님은 어미 닭이 되어 나를 품어주셨다. 병든 병아리처럼 시름시름 앓던 나는 어느새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정말 사랑은 생명에 가까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