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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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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서로 길들여지지 않으실래요?


BY 선물 2003-09-01

꽤 오래 전의 일이다.어떤 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동석하게 된 남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곤혹스런 일을 당하게 되었다.그 전에 아르바이트 하던 카페가 바로 앞에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남자들의 얼굴에는 당혹해 하는 빛이 떠 오르는 것이었다.차마 말을 못 꺼내고 있어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카페가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이라는 것이었다.순간 나도 당황스러움을 느꼈으나 이내 `푸하'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럼 제가 술을 팔았나 보죠 뭐."

한 친구가 친척 분이 새로 카페를 개업하게 되었는데 우선 방학동안 만이라도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했었다.하루 4시간씩 차를 서빙하는 일이었는데 시간당 700원을 받았으나 내 용돈으로는 충분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그 카페가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테임(tame:길들이다)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나는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길들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 했었다.그래서 신이 나서 어린 왕자 그림을 그리고 예쁜 글씨로 각종 메뉴를 적은 메뉴 판까지 손수 만들어서 사용을 했고 음악도 `꽃과 어린 왕자'라는 곡을 열심히 틀어서 카페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압구정 현대백화점이 앞에 들어서 번화한 곳이 된 그 곳은 당시에만 해도 번화가에서 약간 비껴 났던 곳이라 손님이 별로 찾지를 않았었다.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 곳을 그만 둔 뒤 언젠가부터 찻집이 아닌 술집으로 업종을 바꾸었던 모양이다.

내가 어린 왕자를 그렇게도 좋아 했던 것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특히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 짐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대목에서는 그 감동이 더욱 크게 느껴졌었다.
몇 번이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었던 그 책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두 개의 활화산과 한 개의 사화산,그리고 교만하고 까다로운 장미 한 송이와 바오밥 나무가 전부였던 작은 소혹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자신을 떠나게 만든 사이 나쁜 장미 꽃을 늘 잊지 못한다.그리고 늘 염려한다.여우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길들여짐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자신의 별에 두고 온 교만한 장미와 꼭 닮은 수 많은 장미들을 보게 된다.처음에는 자신의 그 장미 꽃이 그렇게도 흔한 것에 실망하였으나 길들이는 것에 대해 알게 된 뒤로는 오히려 그 수많은 꽃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너희들은 아름다워.그러나 너희들은 쓸쓸해."라고...
여우는 또 이런 말들로 길들여 짐을 설명해 준다.
"네 장미가 그렇게도 소중한 것은 네가 네 장미를 위하여 잃어 버린 시간들 때문이야."
"언제나 네가 길들인 곳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그러나 그런 길들임을 설명하던 여우도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지게 되고 마침내 헤어지는 아픔을 맞게 되고 만다.그러면서 "길을 들여 놓으면 좀 울 염려가 있는 거야."라는 말을 남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소중한 비밀도 함께 알려 주면서...

컴퓨터를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사이버 세상에서 새로운 만남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분간이 쉽질 않았고 그저 낯선 이름들로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방에게도 내가 생소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여우가 가르쳐 준 것처럼 서두르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어느 사이에 특별하게 길들여지는 관계들이 하나 둘씩 생겨 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수 많은 벗님들 중에서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바치면서 소중하게 얻게 된 어린 왕자의 장미꽃 같은 님들이 있다.그래서 그 이름들은 더 이상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조금씩 내 부끄러운 마음들을  갖게 될 이름들이기에...더구나 눈으로가 아닌 글에 나타나는 마음으로 서로를 보는 관계이기에...

가끔씩 깊은 밤 중,같은 시각에 같은 공간에서 글을 공유하게 되는 님들이 있다.그럴 때 내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은 저 건너 편 어딘 가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그 님을 보고 있다.
때로는 "길을 들여 놓으면 좀 울 염려가 있는 거야." 라는 여우의 말처럼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한,그러나 이미 길들여진 님들과의 어이없는 이별을 겪으며 갖게 될 아픔을 예감하기도 한다.

언제나 첫 정이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나에게도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즉,길들여진 인터넷 카페가 있다.그 곳에서 고운 님들과 마음을 주고 받다가 글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단순한 대화가 아닌 글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그러나 그렇게 해서 찾게 된 새로운 공간은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어색했다.내가 길들여지지 않은 쓸쓸한 꽃이 되어 그 곳 님들이 나를 길들여 주기를 기다리는 애타는 만남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역시 시간을 들인 만큼 신기하게도 다시 그렇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더 이상 낯설지 않고 어느 새 함께 숨 쉬고 함께 아파해주는 님들을 갖게 된 것이다.그러나 늘 스스로 애써 들으려는 것이 있다.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나는 그 말을 스스로 원해서 듣고 또 기꺼이 가슴에 새기려 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있을 보이지 않는 꽃 때문이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있을 보이지 않는 우물 때문이라고 얘기했다.나에게도 그런 꽃과 우물이 있어 아무리 멀고 생소한 곳이라도 그런 님들이 살고 있는 곳은 다정하게 느껴지고 따스한 불빛처럼 느껴지는 것이다.그런 님들이 조금씩 생겨날 때마다 내 아름다운 세상도 그만큼 넓어지리라.
그래서 나,지금 이렇게 속삭이며 님들을 유혹하려 한다. 
"우리 서로 길들이지 않을래요?"

*      *       *      *     *     *      *       *      *       *      *      *      *     *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 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내가 그 별 중의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될 거야.>
생떽쥐페리 아저씨로 인해 행복함을 감사 드리니 부디 어린 왕자의 아름다운 별에서 행복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