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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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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집


BY 생각하는 이 2004-11-09

    그리운 집 추진 날 오후, 길모퉁이에 솜뭉치처럼 얽힌 바람이 지지리 궁상을 떨며 볕 자리를 깔고 앉아 졸고 있다. 지하 단칸방으로 단 흙처럼 뿌려지던 햇살이 몸살로 자리 누운 지 오래 장롱 속 눅눅한 아이의 옷가지마다 버짐처럼 번진 곰팡이를 털어 내며 길 끝에서 길을 찾는 나를 본다. 짐을 꾸릴 때마다 동굴같은 어둠 끝에 서면 볕드는 마당이 그리운 치솟는 전세 값이여, 새벽으로 축축한 방구들을 몇 겹의 솜이불로 성을 쌓고 아이는 엉겅퀴 홀씨처럼 쿨럭인다. 세면장 귀퉁이에 엉거주춤 서 있는 우리 집 귀뚜라미 보일러는 이제 울지 않는다. 늘 또아리를 트는 불안한 꿈 때문에 조간 신문 오늘의 운세를 벌건 눈으로 읽는 남편, 언젠가는 우리의 이름을 문패에 새기리라 부질없는 희망의 자리에 복권 몇 장이 비틀거린다. 아이의 옷자락에서 파릇파릇 곰팡이가 새끼를 치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리운 피붙이가 되는 세상살이여, 홀씨처럼 쿨럭이며 늦은 잠에서 깬 아이 손을 잡고 옥상을 오른다. 단 한 번도 주인집 너른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탐한 적 없건만 축축 늘어진 빨래를 들고 가파른 옥상을 오를 때면 괜시리 주눅이 들어 자꾸 헛기침이 나온다. 옥상 난간에서 본 잿빛 하늘은 굴뚝새처럼 울어주고 저 가파른 언덕 끝까지 꽃등불을 켜고 있는 집들은 고요하다. 저 많은 집들 속에 내 짐을 풀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온다. 문득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옥상에서 뛰놀던 바람이 깔깔대며 봉숭아 꽃씨를 터뜨린다. 아이가 후후후 꽃씨를 날리고 있다. - 생각하는 이 - 이 시는 지난 여름 끝물에 지은 시입니다. 제 삶이 극도로 불안해질 때 시도 쓰여지는 듯 이 시를 쓸 때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 시를 쓰고 나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건 시가 다분히 현실과 연결 된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적어도 내 현실이 이 시 어디엔가 박혀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의 극적 감동을 위해 단칸방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끌여 들였지만 내 집을 갖지 못한 불안한 삶이 늘 희망의 자리를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내 현실로 빚어진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