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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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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왜 몰랐을까?


BY 나의복숭 2003-09-24

성질이 까다롭고 철두철미한 울 웬수는
옷입는것도 그냥 편하게 아무렇게나 입는게 아니라
꼭 정장을 고집했다.
그래서 와이셔츠를 다릴때마다 입버릇처럼
'아이구 와이셔츠 다리기 졸업하는날이 내 팔짜 피는날'
요러면서 우스개 소릴 했다.

씻을때도 그렇고 다림질 할 때도 와이셔츠는 잔손이 많이간다.
매일 갈아입어야 하니 세탁소에 맡기기도 곤란하고
그저 시간날때마다 으샤~으샤~ 소릴내며
다림질할밖에....
하루 한개라지만 와이셔츠 다린다고 꺼집어 내어놓으면
왜 그리 딸려서 다릴게 많은지....

와이셔츠 대신 티셔츠를 입으면 마누라가 좀 편하겠지만
마누라 편하는 꼴을 못보는 남자가 울집 웬수다.
아이구 피곤해라... 말하믄
'한푼 벌겠다고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아지매 생각해봐.
이도희 팔짜는 상팔짜지.'
요러면서 약을 올렸는데 그속에는 항상 당당함이 묻어있었다.
아 당당함이라기보담 잘난척이겠지.
그 잘난척하는걸 배알이 뒤틀려 못봐준 난
막간만 나면 웬수하고 주거니 받거니 씩씩하게 쌈을 했다.
쌈끝의 화해는 언제나 아지랑이같이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정 때문에... 라는말로 뼈타고 살타며 끝을 맺었고.ㅎㅎㅎ

'아이구 와이셔츠 이거 좀 안다리믄 안되나'
다림질이 필요없는 천이라도 다려야 입는 까다로운 성질땜시
불평하든 어느날의 내 말에
'기다려봐. 언젠가는 와이셔츠 안입을 날 있겠지'
'치칫~ 내손에 장을 찌져라'
그넘의 손에 장 찌진단 소리는 예나 이제나 왜 그리도 했는지..
언제까지 그는 와이셔츠를 입어야 할 사람이고 나는 다림질을
해야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몇해의 세월이 흐른후
어느날부터 울웬수는 와이셔츠를 입지 않았다.
아니 입을수가 없었다.
정장하고 나갈때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나는 와이셔츠 다림질을 하지 않았고.
언제까지나 입을거 같았든 와이셔츠.
언제까지나 할줄 알았든 다림질.
안하게 되었을때의 처지는 극과 극이였다.
내가 와이셔츠 다림질 할때의 그는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고
여유만만했는데
내가 와이셔츠의 다림질을 딱 그만둔 후부터
그 자신감과 여유는 조금씩 사라져갔으니...
와이셔츠 다림질 그만둔날이 내 팔짜 피는날이 아니라
인생 종치는날인걸 그땐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못하고 늘
더 나은걸 바란다.
나도 그랬다.
그 시절이 얼마나 좋은 시절인지
생각못하고 맨날 더 나은것을 추구했으니..
한 세월 흐른후
내 처지가 바뀌고 보니 인제서야
아하~ 이게 아니구나 생각을 했지만
이미 세월은 저만치 흘러가고 붙잡을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이 정도의 행복이나마 이렇게 유지하는것도
한세월 흐른후는 그때가 최고의 행복한 시절 아니었을까
생각할때가 있을껀데...
현재는 언제나 과거로 흘러가고 있고
멀다 생각했든 미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는데...


너무 새거라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몇 개 남겨둔 와이셔츠.
울웬수가 입을일이 다시 돌아올런지
'아이구 와이셔츠 안입어면 안돼?'
내가 불평할날 있을지...
아마 다시는 그런날이 돌아오지 않을거 같다.

아.
지금도 뭔가 불평이 나올꺼 같은데
이 불평도 언젠가는 그리워질꺼라 생각하면
참아야겠다.
그래. 참자. 참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