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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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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한번 만나줘요.. ''


BY 올리브 2003-08-20

낮근무 인계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응급실이었고 입원환자 때문이었다..

 

'' 여기 응급실인데요.. 환자 올릴께요..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남자환자 입니다.. 수술후 병동으로 옮길겁니다.. ''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남자환자는 병동에 옮겨졌고 손가락 외에는

집중적인 간호가 필요치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근무 간호사에게 인계하기전 환자 점검을 하기위해 병실순회를 하는데

그 남자환자가 손가락을 높게 치켜 세우면 인사를 했다..

 

'' 누나.. 누나 맞죠? 나보다 ... 아닌가? 가운을 입고 있어서 난 잘 모르겠다.. 

   가운 입고 있으면 다들 나보다 누나 같아서 말이죠.. 나.. 좀 아픈데..

   진통제 좀 놔줘요.. 아까 맞긴 했는데 또 아파요.. ''

 

의사에게 보고후 진통제 처방을 받고 주사를 놔주러 병실로 다시 들어갔다..

 

'' 누나.. 안 아프게 놔줘요.. 나 아까 저 누나가 놔줄땐 무지 아팠는데.. ''

 

하며 옆 간호사에게 눈을 흘겼다.. 나쁜 감정으로 그랬던건 아니고 우리한테

잠시 아이처럼 응석이라고 부리고 싶어서 그랬었던것 같았다.. 그때 병실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 들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난 그때 그 여자가 누나인줄

알았고 다른 환자가 급히 날 찾아서 병실문을 나서고 있었다.. 

 

'' 누나.. 소개할께요.. 여기 이 여자 내 애인 이예요.. ''

 

차분하고 단정해  보이는 그 여잔 젊은 연인 이라고 했다..

나이도 어렸지만 만난지는 오래됐다고 하면서 여잔 남자의 상태에 대해 궁금해

했고 손가락이 절단된 것에 대해 울먹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 젊은 연인은  병실에서 잉꼬 부부처럼 보기좋게 늘 함께 했었고

다른쪽 손가락이 문제가 생겨 봉합수술 날짜가 잡힐때도 장난스런 웃음으로

늘 밝게 우리 간호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밤근무 였었다..

 

'' 그 남자 환자 다시 봉합수술 하러 수술방에 아까 들어갔는데 아직도 안

   나왔거든.. 좀 시간이 걸릴려나봐.. 출혈이 많았다고 하네.. 지금 애인이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울고 난리가 났어.. ''

 

그리고 새벽이 다 되서야 그 남잔 정신잃은 아이처럼 병실로 되돌아 왔고

통증이 심해서 잠을 잘수가 없다고 했다..  여자는 그 옆에서 울고 있었고

남자도 아프다면서 울고 있었다..

 

나중에 수술방 간호사 한테서 들은 얘기로는 부분마취를 하는데 손가락에서

피가 마구 나오는걸 보더니 잠시 기절도 했었단다.. 나중에 깨어나서 하는말이

무지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면서 웃더란다..

 

그 후로 우리 간호사들은 그 환자를 볼때면 그 얘기가 생각나서 가끔 놀리기도

했었고 입원기간이 길어져서 그랬던지 친하게 병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퇴원을 했고 우리 간호사들은 그동안의 어리숙했던 정 땜에 서운해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낮근무가 막 끝나갈 무렵에 날 찾는 전화를 받았다..

 

'' 누나.. 나 .. 예요..  나.. 저번에 입원했었던.. 알죠? ''

 

'' 아.. 생각나.. 근데 지금 괜찮지? 아픈데 없지? ''

 

가끔씩 안부전화 걸려오는 환자들이 곧잘 있어서 난 습관적으로 아픈데 없냐는

안부말을 건넸고 반갑게 대했다..

 

'' 누나.. 나 .. 한번 만나줘요.. 나.. 누나땜에 잠도 잘 못잔다구요.. 이거 다 누나땜

   이니깐 책임져요.. 나 .. 죽겠다구요.. ''

 

그때까지도 난 내가 뭘 잘못한거 같아서 당황스럽고 궁금했다..

 

'' 내가 뭐 잘못했니? 어디 아파? ''

 

나보다 몇살 어린 환자를 남자로 대한적은 당연히 없었고 귀여운 동생처럼 늘

웃어줬더니 맘에 자국이 남았던것 같았다..

 

'' 너.. 나. 맨날 바쁜 간호사 인거 알지?  너 내가 일하는거 맨날 봤었잖아..

   나 지금도 할일이 무지 많아.. 그리고 너 애인 있잖아.. 나보다 더 많이

   이쁘더라.. 난 너무 삐쩍 말랐잖니.. 나 전화 끊는다. 인계시간 이야..

   담에 한번 병원 놀러오면 맛있는거 사줄께. ''

 

누나답게 대꾸한다고 생각하면서 말하긴 했는데 잘한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병원에서 바삐 살다보면.. 늘 갇힌것 같은 느낌으로 살다보면..  

이런일이 종종 있었다.

 

애인까지 있는 남자가 잠깐 즐겁게 지냈었던 간호사한테 보인 호감이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졌던 그날 ..

 

난 그날 전화를 받지 말았음 좋았을것을 하는 실망스러움에 맘 한자리가

우스워졌다..

 

살면서 이런일도 있는거겠지..

 

그리고..

근사한 남자와 근사한 음악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