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나의 여고시절 추억 한편이 생각난다.
그 시절.
학교에서 왜 그리 못 가게 말리는
미성년자 불가 영화를 그렇게도 보고 싶었는지?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된 요즈음에는 비디오, TV, 심지어 인터넷으로
안방에서도 편안하게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를 선택하지만
나의 여고시절엔 전적으로 극장에 의존하고 살았던 가난한 세월 아닌가 싶다.
쉬는 시간 10분에는 늘 영화배우 이야기로 화제가 집중되었고
심지어 열성파들은 인기투표를 하면서 서로의 지지배우에게 열도 올리고...
그 당시 외국 남자 배우는'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
여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비비안리, 잉그리드 버그만 등등..
국내 배우로는 남자가 톱으로 단연 신성일씨 이였고,
여자는 김지미씨 아성 시대라고 할까..
물론 엄앵난씨와 쟁쟁한 인기 싸움이 치열했다.
우리 학교 주위에는 많은 고등학교가 있었고
남문시장이란 재래 시장도 이었다.
남문시장 맞은 편에는 대도극장.
대도극장 길 건너 바로 마주보면서 대한극장이 있었다.
두 극장에는 어떤 영화가 오느냐에 따라서 우리 학생들이 몰려 다녔고,
관객수가 좌우하는 흥행도 변하였으리라.
물론 금지된 프로에는 선생님들의 감시가 심했고.
그 시절에 많은 극장이 대구에 있었는데....
주로 외국 영화 상영하는 곳이 우리 학생들에게 짱이다.
용돈이 궁했던 그 시절 영화 한편을 감상하려고
부모님에게 거짓말로 황금을 조달해야 하는가 하면
선생님과 숨바꼭질의 연극을 해야 하는 에피소드가 벌어지곤 한다.
언니나 오빠의 힘으로 갈 때는 개봉관 1류 극장인 자유극장.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때는 2류인 송죽극장으로...
넉넉지 못하거나 친구에게 붙어서 갈 때는
3류인 대도극장이나 대한극장이 우리의 선호도다.
명절 때 용돈이 많이 생기면 사복을 입고
개봉관인 자유극장으로 가곤 하였는데
지금도 그 극장이 그 자리에 있는지?
여고 3학년 1학기 중간 고사 중이었다.
보통 월요일에 시험이 시작되면 금요일까지 계속되고 시험이 끝난
금요일 오후에는 우리는 해방된 민족처럼 극장으로 가곤 했다.
즉 자칭 독립운동 하러 간다고 명하였다.
시험 끝나는 넷째 시간 후 종래 때는 극장으로 못 가게
전교실에 실치한 앰프에서 훈육 선생님의 훈계가 방방 울린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는다고 하였던가..
절대로 그 소리가 우리의 귀전에 전달 안되었지..
시험이 내일까지인데
대도극장의'차타리 부인의 사랑'은 오늘이 종영이 아님 가?
물론 소설은 읽었지만 영화하고 소설은 당연 틀리는 거.
아~~억수로 타임도 안 맞아....재수 옴 붙었나?
우리의 억울한 한탄은 끝이 없었고......
할 수 없다.
날짜를 하루 당겨서 오늘 우리는 독립운동 거사를 꼭 이루어야 한다.
나의 영원한 짝지 그녀와 독립운동 하기로...
누가 먼저 라고 하기 전에 마음은 이미 같은 동색이 되었다.
4교시 시험이 끝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 둘은 대도극장으로 누가 부르는 것처럼 속히 입장.
신나게 영화 한편을 때리고 있었다.
물론 교복을 입은 체로 자주색 가방도 들은 체....
영화가 반정도 지나 갈 무렵..
옆의 그녀가 내 옆구리를 꾹꾹 쑤시면서 사인을 보내네.
"야! 아푸다. 와카노"
"야! 순아야. 큰 일 났대이. 저 뒤에 봐라.
악마 축구공이 후라쉬 켜고 극장 내 검색 한데이"
"뭐라고?"
"우리 속히 뛰자"
'악마 축구공'은 우리 학교 체육담당 훈육 주임의 별명이다.
얼마나 우리 학생들을 괴롭혔으면 그 별명 앞에 악마의 애칭이 붙었겠는가?
물론 우리가 잘못하여 벌을 받지만 우리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방방 뛰던 철없는 여고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본 정신이 아니다.
의자 밑으로 살살 기어서 옆 문으로 나왔다.
아~~~~~어이하랴!
극장 입구에는 또 다른 선생님이 버티고 있지 않는 감!
"오~~~~~~쿼바디스.. 주여! 우리를 안정한 곳으로 인도하소서.."
그 시절 학교에서 나의 직책은 전교 부회장.
붙잡혀서 벌칙을 받는다면 아주 중벌일거고 적어도 근신에 가까울 거다.
그래 조건없이 뛰고 보자.
하는 수없이 극장 안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이상하게 작은 도어가 있었고 급한 김에 우리는 그 곳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문을 안에서 탱탱 잠가 걸었다.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은 도둑질 한 것처럼 방방 뛰었다.
너무 힘이 없어서 털 썩 주저앉았다.
두 다리를 쭉 뻗고 가방을 옆에 놓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배도 고파 왔다.
도체 영화가 뭐길래 점심도 못 먹었잖아!
그리고 매번 볼 때마다 목 숨 걸고 독립운동 하는가?
하는 짓이 우리는 애국자이고 선생님은 일본 순사이다.
아~~~~언제 우리는 독립하여 편안한 백성 될꼬?
"야, 순아야 .이 것 좀 봐봐봐..
화면이 반대방향으로 나온다. 자막이 좀 보기 힘 들제?"
"잉$#@.. 영화라고?"
그렇다. 우리가 피난 온 곳은 스크린 뒤쪽 창고 방이다.
가깝게 화면이 있어서 눈은 좀 피곤했지만 그런 대로 보기는 괜찮다.
단 해석하는 자막이 반대쪽으로 나오니 읽기가 불편할 뿐이다.
자꾸 보니 글도 이해할 수가 있었고.....
마음 맞는 친구랑 둘이서 영화한편을 감상하는 그 기분은 굿 나이스이다.
또 누구의 방해도 없지 않는가?
야~~~~~해방된 민족인..우리는 자유다!
친구와 나는 영화가 다 끝나고 불이 켜지도 물론 나오지 않았고
다시 상영하기를 한참 기다렸다.
누구는 꾀 없나?
다시 영화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가방을 들고 태연히 극장 문을 나서며
독립운동에 성공함을 자축하기 위하여 국화 빵집으로 향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면서......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녀의 우정은 계속되고 제일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곤 한다.
이제는 지나간 옛 추억으로 남아있고,
또 다시 그 시절이 오지 않음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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