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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날 보고 재혼하라고?


BY 박 라일락 2003-07-20


이제 와서 날 보고 재혼하라고..


그녀!
재혼을 해서 미국으로 이민간지도 벌써 몇 년 세월이 흘렀다.
생각할수록 괴심하고 앙큼하기 짝이 없는 계집애!
물론 그녀는 친했던 나의 女高동기이다.
 
재학 시절부터 그녀는 
다른 과목은 별로 이었지만 영어를 참 잘했고
졸업하면서 늘 외국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우리 집 부근에 있는 미팔군에 자주 들락날락 했는데..
우리 오빠가 그녀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딱 질색으로 생각하셨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 주위에는 미팔군부대 위안부들이 엄청 많았기에
오빠께서는 미군부대에 자주 출입하는 그녀를 두고
아마 색안경 끼고 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도 나도 결혼을 했고
서울 사는 그녀의 소식은 女高 친구로부터 한번씩 듣곤 했다.
 
건설계통에 있는 자기 오빠 대학 동창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
젖먹이와 철부지 어린 두 딸을 두고 
남편이 월남전이 한참일 때 사업을 월남 그 곳에서 하다가 
불의사고 입고 사망한 소식일랑..
 
그리고 
그녀가 외국인 회사에 취직해서 쭉쭉 빵빵 잘 나가고 있다는...
후에 미국인 상대로 무역하는 사업체에 사장이라는..
몇 번인가 여성잡지에 
우먼파워 직장인이란 타이틀로 나오기도 했었지.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멀리서 소식만 듣고 살았는데..
 
우리 화상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가버린 몇 달쯤 후인가
차갑고 매서운 찬바람이 씽씽 불던 1월 어느 날.
그 녀!
그녀가 말이다...
어떤 소식도, 온다는 예고 한마디도 없이
몇 백만원 하는 비싼 밍크 롱 코드와 여우목도리를 걸치고 
내 곁에 불쑥 나타난 기라.
 
 
그러니깐..
女高 졸업을 하고 강산이 한번 변하고
다시 변하려고 하는 세월의 강을 훌쩍 건너서 말이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었다.
꼭 박 만 3일을 두 여인이 내 안방에서 동침하고 머물면서
추억 속의 단발머리 여고시절 
얘기는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는 끝이 없었고..
 
 
와중에도 그녀의 남편 얘기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녀 왈!
자기 남편이 월남에서 개인사업을 하다가 운명을 달리하였다네. 
시신은 남편고향인 포항부근 산에 묻었고..
그녀 자신은 죽은 자에게 미련 같은 것은 아예 두지 않기에 
이제껏 한번도 산소를 찾지 않았고 
앞으로도 찾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 집에 오는 길목에는
자기 남편 산소가 있건만 그 냥 지나서 왔다고 하면서..
이 뇨자에게 자기처럼 그렇게 살라고 충고하니...쩝!
정말 독한 뇬!
 
나랑 지랑 둘 다 침대머리가 외로운 솔로이기에..
물론 재혼이야기가 당근 아닌가.
그녀는 
이미 튼튼한 기업기반이 잡혀있기에 
경제적으로 웃는 모습이었고.
두 딸은 이미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상태인데도 
절대 재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뭐?
남자가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같은 줄에 서있는 느낌 밖에 없다나...
혼자 살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무엇 땜에 재혼을 하느냐고 
입에 거품을 뿜고 독신주의에 얼굴에 열 올리는 모습이었다.
또한 ..
날 보고도 절대 재혼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거듭하였고..
 
그 녀!
女高시절에도 공짜 참 좋아하는 뻔뻔女로 통했는데..
그 버릇은 아직도 개(犬)주지 못하고 그냥 지니고 있는 것 같고
10년이 훌쩍 넘은 오랜만에 오는 친구집에 
음료수 한 병도 사 들지 않고 빈손으로 와서 랑...
3일 밤낮을 먹고 자면서(아마 겨울 휴가라고 했지.)
심지어 다방 커피한잔도 
자기 황금 땡 전 한 푼도 나온 일 없었고..
그러면서 돌아가는 길목에서..
‘너희 집 건 오징어가 맛있으니 한 축 주렴..
먹었던 대게가 맛있었으니 몇 마리 구해주면 안 될까..
장아찌가 고향냄새가 풍겨서 좋더라...‘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 구! 요 얌체..아직도 철들라면 멀었구먼.‘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도 
떠나는 친구에게 옛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건 오징어랑 대게랑 장아찌랑 정성껏 준비해서 랑..
친정 온 딸자식 챙겨 주듯이 해서 이별하였건만..
서울로 돌아간 이후로 그녀는 전화 한통 없는 기라.
 
괘심한 우정도 다 있다는 생각은 잠시..
다 잊고 살았는데..
한 1년이 지나고 대구의 女高 모임에서 그녀 소식을 접했는데..
참 기가 차서...
그녀가 얼마 전에 재혼해서랑 사업정리 다해가지고
미국,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나..
그녀가 재혼한 남편은..
가진 황금도 나이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재미교포라고 하던가..
날보고 재혼하는 것은 미친뇬이라고 입에 거품을 내 뿜더니..
소식도 없이 제 뇬이 먼저 선수를 치다니..
'싸가지 없는 여편네야 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그래도 축원하였다오.
 
 
수많은 세월의 강 건너 그녀를 또 잊고 살았는데..
엊그제... 
미국에 살고 있는 K라는 다른 女高동기생이 잠시 귀국을 했고
병고에 시달렸다는 나의 소식을 듣고 
위로하는 전화 통화 중에 미국에서 그 녀를 만났다면서
잊고 있었던 그녀 소식을 전해주었다.
 
미국에서 그녀 자기는 잘 살고 있다면서..
날 보고 아직도 재혼을 하지 않았으면 
재혼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면서..
꼭 전해 달라고 하더란다.
 
‘뭐라고.. 미친 뇬!
이제 와서 날 보고 재혼하라고?
한 나이라도 젊을 때는 
지뇬이 재혼 못하게 도시락 싸 들고 말리고 말리더니..
그 좋은 젊은 시절 다 넘어가고 
이젠 그 누구도 봐주는 이도 없는...
아무 소용 짝없는 짐으로 남게 되는 이 마당에 
다시 재혼함 생각해 보라고?
그럼 좀 일찍 일러주지...
그 계집애는 평생 내 삶에 도움이 안돼!
지 뇬이 재혼해서 사니깐 재미가 콜콜 나서 랑...
나한테 미안한 생각과 양심에 가책이 느끼는 갚다‘
그녀 소식을 전해준 女高동기생 K전화에..
미국 가서 그녀에게 꼭 전해 달라고 한 나의 대답이었다.
 
하기 사..
내가 재혼하지 않았던 것이 그녀 탓은 아니겠지만..
괜히 그녀의 말이 얄밉고 심통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