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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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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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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BY 참솔향 2004-03-04

사십대 딸이 육십대 엄마에게

사랑을 좀 줘보라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사랑을 좀 줘보소, 사랑을...나도 친정엄마 사랑이 그립단 말요!"

 

엄마랑 분란이 있었던 이유는 딴 일이었지만

나는 겸사겸사(?) 그동안 내 묵은 서운함 까지 폭발하여

엄마에게 퍼붓고 말았다.

갑작스런 나의 당돌함에 엄마는 할말을 잃었다.

엄마는 그러고 내가 떠난 후에 앓아 누우셨다.

 

"아웅~~~엄마~~~아이 러뷰~~~"

매정한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며

나에게 감겨오는 딸아이를 냉혹하게 뿌리치면서

나는 징글징글한 대물림에 치를 떤다.

아~~~나는 왜 우리 엄마의 딸에 대한 냉정함을 닮고 말았는가?

 

산골 출신 우리 엄마는 근방의 도시 명문여고에 진학을 했을 정도로

재원이었으며 나름대로 꿈도 키웠으리라.

그 당시 외갓 동네의 엄마 또래 친구들이 국민학교만 겨우 나올 수준이었으니

엄마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했을 거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부모님의 떠밈으로 여고 졸업한 해 여름에

우리 아버지랑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대학생이어서 도회지에 나가계시고

갓 스물을 넘긴 새댁은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어머니가 계시는

일 많은 농촌에서 신혼을 보내야 했다.

남편도 없는 시집살이에, 그다가 이제 갓 여고 졸업한 부끄러움 많은 나이에

그야말로 나는 준비 안된 엄마의 아기로 잉태되고 말았다.

살짝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아기는 어느새 자라 탄생의 순간을 맞는다.

아버지 탄생 이후로는 아이 울음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집안에

비록 딸이지만 첫 아이의 울음소리라

아무리 앙앙거리는 울보 아기였지만

나의 증조할머니, 할머니는 엄마손 가기 전에 벌써

업어주고 달래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나는 그렇게 사랑 듬뿍 받고 자랐다.

하지만 한쪽 구석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그것은 바로 엄마사랑에 대한 굶주림이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그 나이에 뭔 자식 사랑이 흘러나왔겠는가?

비록 자식사랑이 흘러나왔다 해도

시조모, 시모 앞에서 부끄러워 표현도 못했겠지.

그러다 엄마는 둘째, 셋째 연달아 자식 귀한 집안에 자손을 낳게 되었다.

이미 자라고 있는 자식은 돌볼 여력도 없었겠지.

하지만 엄마는 장녀인 내게 의무는 다했다.

동생들 먹이지 않는 보약에, 동생들 못보내는 유학에, 동생들에게는 하시지 않던

학교방문도 종종 하시던 분이다.

 

그러나 엄마는 내게 애틋한 눈길, 손길 그런걸 주려고 하지 않았다.

바빠서 인지, 마음이 안가서 인지.....

나는 늘 그런 엄마가 서운해서 속으로 울었다.

도란도란 딸이랑 친하게 다니는 모녀를 볼때면

너무 부러워서, 샘나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더 준비된(?) 상태에서

내 첫아이 내딸을 낳았다.

어릴 땐 물고 빨고  우리 엄마 보란듯 애정을 과시했다.

아~~~그런데 슬금슬금 그 대물림의 고리가 이어질 줄이야.

 

나는 딸아이를 안아주지 않는다.

안기려고 달려드는 딸아이를 징그럽다며 떼어낸다.

나도 왜그런지 모른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안아주고 싶어도 안된다.

 

"딸아, 미안하다......"

 

대물림, 정말 징그럽다.

우리 딸은 어떻게 날 이해하려나?

이 다음에 그 아이도 나에게 사랑을 줘봐라고 대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