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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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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oint Security Area


BY 밥푸는여자 2004-11-25


    공동경비구역의 의미는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된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들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것은 공간적 의미로 해석되어지기 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사이'의 의미라 볼 수도 있겠다.

    나라살림이 나아진 것인지 개인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인지
    언제부턴가 한지붕에 깃들어 살면서 각자에게 개인공간이
    주어지고 공동경비구역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과
    입지가 차츰 줄어드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릴적 우리집은 내 키보다 서너 배나 더 높은 황토흙으로
    굳어 다져진 언덕 밑에 있었는데 숙자네 꿀꿀이네 명옥이네와
    일자로 이웃한 집에서 살았었다. 언덕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고
    방바닥에 업드려 턱을 괴면 바로 코 앞에는 온갖 벌레들이 톡톡
    튀어오르며 뛰어 노는 놀이터가 있었다 함께 지내는 우리들에게
    몇 군데 공동 경비 구역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담의 경계가
    없는 뒷뜰은 우리들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

    봄이면 옹기종기 이름모를 들꽃이며 졸망거리는 돌멩이 위로
    기어가 작은 꽃을 피우는 채송화가 고왔다. 해가 좋은 날이면
    나비떼는 온종일 뒷뜰을 떠나지 않았고 매미는 여름내내 축축한
    창호지 틈새로 말을 걸어왔으며 가을이면 한 잎 두 잎 떨어져
    쌓인 질퍽한 눈길보다 더 미끄덩한 낙엽들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기도하고 겨울이면 솜이불보다 더 푹신한 눈 위에서 뒹굴어도
    보았다 오후가 되면 갈 곳 없는 겨울햇살은 차가운 날씨에
    긴장감으로 팽팽하니 속살을 훤히 내보이는 창호지와 창호지
    사이에서 손가락을 펼쳐든 단풍잎으로 찾아 들어 안식을 찾다
    잠이 들기도 한다 겨울 달이 휘어청 밝은 날 희끄므레한 그림자
    서넛이 마주보고 웃기도 한다. 내복차림에 내침을 받은 우리는
    추운 겨울밤 뿌연 입김을 훅훅 뱉어내며 벌을 서면서도 앞니가
    듬성듬성 빠진 입을 벌려 웃으며 서로에게 위안을 받기도 했다

    가끔 고성을 지르며 육탄전을 벌려 싸우기도 하고 서넛씩 편을
    지어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금을 긋기도 하였지만 소박한 오후
    햇살은 쪼구리고 앉아 황토흙으로 밥을 짓고 있는 조그마한
    등에 앉아 반성과 용서를 가르쳐 주었고 채송화 줄기를 눌러
    만든 갈치에 황토흙 소금을 살살 뿌려 진흙 화덕에 얹어 굽는
    고사리같은 손등을 간지럽히며 어우러짐의 화해를 가르쳐 주었다.

    버터냄새 진한 과자는 아니었어도 형형색색의 소꼽놀이 기구는
    아니었어도 황토흙으로 만들어 사금파리에 담은 밥 한 사발과
    채송화 줄기를 눌러 구운 갈치구이 한 접시에 마음들은 풀어져
    버리고 거침없는 화해와 어울림이 있었던 곳이었다

    또 하나의 공동경비 구역이 있었는데 각자 집안으로 들어서면
    형제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다가도 종국에 끌려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간단히 심판관의 심문이 끝나고 나면 다시 화해와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곳도 있었다. 물론 어느 집에서 어떤
    싸움과 혼찌검을 받았는지 얇은 담벼락 너머로 들려 서로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는 되묻지 않았었다

    어릴 때 즐겨 사용하던 물건들을 기억해 내보자면 사금파리로
    만든 소꼽장난감을 비롯하여 어떤 것이라도 그 모양새가 지금
    것과 비교해 볼 때에 세련된 것은 없었다. 투박하기 이를데없고
    사용방법도 많이 불편했음에 틀림없다. 허지만 편리함에 더하여
    세련된 모델로 등장하는 요즘의 그 어떤 상품보다 많은 감동과
    감성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된다. 지금 누리지 못하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갖고 옛것에 대한 찬양론자라면 나이듦의 억지일까

    우리집 부엌과 마루를 가르는 기둥에는 투박하게 매달린 사각상자가
    있었다 지금 그 사각상자의 이름조차 기억해 내기 어렵지만 나무로
    만든 사각상자 듬성듬성 뚫린 곳에서 직선의 모노음이 흘러 나왔다

    "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삼백육십오일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어도 우리집은 언제나 웃으며 산다! ♬♪"

    아침 일곱시 반이던가 '아차부인재치부인'이란 방송이 시작되고
    아침을 여는 가족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귀를 쫑긋거리며
    함께 웃기도하고 혀를 쯧쯧 차기도 하며 애청을 했다. 아침마다
    울려나는 소리가 하도커서 손이 닿는 곳까지 까치발을 치켜들어
    소리를 줄일라치면 아버지께서는 옆집에서 듣고있을지 모르니
    줄이지 말라고 하셨다. 말하지 않아도 이집저집 웃음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이웃사이에 보이지 않은 나눔의
    공동경비구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차츰 살림살이가 나아지며 집집마다 그 사각상자를 사들이게
    되고 같은 시간대에 듣는 방송도 달라지게 되며 함께 하나되어
    누리던 아침의 평화는 깨어지고 말았다. 더하여 숙자네 마루에
    반질반질한 겉옷을 입은 마호가니 전축이 뾰쪽 바늘로 춤추기
    시작했고 그후로부터 우리 중에 누구도 숙자네 마루에서는
    함부로 뒹굴며 놀수가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영역이 넓어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공동경비구역은 무너졌다.

    지금 우리네 집집마다 대형 텔레비젼이며 오디오등이 있어
    아쉽지 않게 누리고 산다. 아이들 각 방마다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고 오디오가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얇팍한
    CD 플레이어며 MP3를 가지고 있어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가족이 함께 평화의 공동체 훈련을 할 수있는 공동경비구역을
    지나다니면서도 각자 플레이를 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은 오직
    지나는 길목과도 같은 공간쯤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인지..

    세월이 흘러 우리네 자녀들의 공동경비구역은 어디메에 있을까..
    평생 사는동안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질 유년의 고운 감동과 감성의
    물결이 흘러흘러 그네들 후손에게 어떤 풋풋한 인간애로 남아있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