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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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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일중에하나


BY 밥푸는여자 2004-10-06


    행복한일중에하나 이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마도 복잡한 서울을 떠나 느끼게되는 고즈넉한 풍경과 삶의 질서에 여유를 가진 사람들의 눈빛이 아니었는가싶다 돌아보니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일은 거의 칠 년 동안 매일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세월을 지켜보았던 일이다 늘 그 자리에 앉아 겹쳐가는 계절을 보며 사람에게 뿐아니라 자연의 오고감에도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깊은 의미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올 해도 어김없이 내 앉았던 도서관 창밖 감나무 잎은 변해갈 것이다 성숙한 가을햇살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가장 낮고 겸손한 나뭇잎.. 평안을 싣고오는 햇살에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나뭇잎은 청아한 갈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살랑살랑 잠들어 거생(居生)하던 제 삶의 끝에서 자유롭게 변할 오색꿈을 꾸고 깨어날 때마다 더 긴 그림자로 눕는 나무는 나뭇잎 사이로 짐을 챙겨 떠나는 저녁 햇살을 말없이 보내고 어둠을 맞을 것이다 한 해를 더 살아 누린 만큼 이듬해 더 고운빛으로 옷 갈아입고 다소곳한 매무새로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작년 초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내 눈에 띄어 책 갈피 사이 한 장씩 넣어둔 낙엽이 이제 제 향을 찾아 곱게 다림질 한 옷 갈아 입고 책장을 넘길 때 마다에 빼꼼히 낯을 내민다 하나씩 간추려 고운색으로 내 좋은이들 이름 새겨 넣어 제 주인 찾아 보내야겠다 여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이 일은 중년의 고개를 넘어서도 변함없이 마음자락 손자락에 머물고 해마다 가을을 보내며 서가(書架)에 꼽힌 책을 뽑아들고 뒤적일 때마다 마름질된 추억이 향으로 묻어나 좋다 가끔은 기억 조차 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잎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허구의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가을에 맞는 내 작고도 소박한 행복함 중에 하나이다 올해도 역시 나는 수줍은 소녀의 볼과도 같은 이파리들을 올 해 만난 좋은 책 갈피에 내 마음을 실어 끼워 둘 것이다. 그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 십년 흘러 제 향은 잊혀졌을지라도 내 삶이 초로인생(草露人生)임을 깨달아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으로 왔다 감을 감사하게 되는 날에 활자 속에 숨어있던 그네들의 나즈막한 숨소리와 향을 검버섯 곱게 수(繡)놓아진 손등에 올려놓고 감사하리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장마다 흐르는 그 귀한 기억들을 감사하리라 올 해도 가을이 내 등 뒤에 서는 날 나는 겸손히 허리 굽혀 곱디 고운 낙엽 몇 장 주어 담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