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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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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캐러갔었습니다


BY 밥푸는여자 2004-04-22

    쑥을 캐러 갔었습니다
    지진한 겨울을 땅 속 깊이에 가는 뿌리에 걸어두고

    눈부신 햇살에 조금은 부끄러이 땅위에 오른 쑥을 캐러..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싱그럽게 불었습니다

    일부러 양볼에, 잔등에 햇살을 얹었습니다

    따슨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등을 데웁니다

     

    눈을 감고 꽃향에 취하고 쑥향에도 취하고

    재잘거리며 부서지는 햇살 향에도 취했습니다

    온 동네에 새들이 봄 소풍을 나온 것인지

    봄의 향연이 벌어진 오후였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쑥에게는 못 할 짓거리였지만

    커다란 부엌 칼을 가지고 가려다 작은 칼을 가지고 갔습니다

    볕의 기氣를 제대로 받아 봄 기운을 통통하게 살찌운 쑥만

    골라서 캤습니다 여린 쑥을 잡고 뾰족한 칼 날을 들이 댈 때

    마다 뜨끔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쑥에게는 피가 없더군요..

    잘린 칼자욱 선명한데 알싸하게 오르는 흙 내음으로만 아픔을

    전할 뿐 제 삶이 잘려져 나간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들려 주었던 이름도 모르는 시인의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상에서 이름모를 꽃 한송이 꺽을 때

     하늘의 별들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흥얼거리며 쑥 버부리도 생각하고 굴을 넣고 끓일 쑥국도 생각하고

    강된장에 쑥 나물 비빔밥도 생각하고 갔었는데 영 아니었습니다

    어릴적 추억을 곱씹으며 쪼그리고 앉아 두시간 남짓 봄을 노래

    했습니다 나 살아서 또 하나의 봄을 캐어 내 속에 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