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엇저녁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흩뿌리던 눈은 입자가 하도 작아 눈雪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미국 사람들 살아가는일에 있어 매사에 철저하게 주의를 살피며 삽니다. 눈의 적설량을 타운별로 알려주며 자동차 정비를 제대로 준비하라는 방송 멘트가 나왔지만 차창에 비치는 여린 달빛 아래 내리는 눈은 곱기만 할 뿐 쌓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새벽 혹시 하는 마음으로 평상시보다 삼십분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여니 온 세상이 설원이 되어버렸습니다. 푸드득 거리던 새들의 날개짓 조차 덮어버렸는지 온 세상에 들리는 것은 사박사박 쌓이는 눈 소리 뿐입니다. 눈이 내릴 때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마도 그 소리는 눈이 차곡차곡 쌓일 때 나는 소리인가 봅니다. 뒷뜰로 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았습니다 발목은 눈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달빛에 비치는 눈빛의 신비로움에 마음을 빼앗겼 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예배당으로 향할 길이 걱정입니다. 이왕지사 내친 걸음이니 하고 차를 몰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 새벽 첫 발자욱, 첫 타이어 자욱을 쭈욱 그리며 큰 길에 나오니 그 이른 새벽에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미 길을 닦아 두었습니다.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원봉사하는 이들이 이곳에 많습니다. 바퀴가 커다란 차를 가진 사람들이 타운에 등록을 하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자동차 앞에 기계를 장착하고 눈을 치우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는데 내 마음에 나눔의 감성 바이러스가 전염이 되었는지 평소보다 일찍 기도의 눈을 뜨고 일어나 교회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불과 한시간 남짓 지났는데 자동차에는 눈이 수북히도 쌓여있었습니다. 하나 둘 셋.. 주차장에서 기도 하는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주인들이 나오기 전에 수북히 쌓인 눈을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치워 놓고 살짝 주차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나보다 누군가를 더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 바이러스가 부족한 내게도 전염이 되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모든 학교는 클로즈 상태였습니다. 덕분에 이집저집 아이들 골목길에 나와 신나게 눈싸움 합니다.. 내 눈과 귀는 그네들의 웃음소리와 뒹구르는 모습에 한참을 행복했습니다
2002.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