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날씨라고 했지만
'추우니까 겨울이겠지, 이까짓것 쯤이야.'하는 마음으로 영동 장터로 향했다.
전을 펴고 나니 숨 쉴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서려나와 그제서야 추운줄 알았다.
발이 시려워 동동 거리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앞에서 붕어빵을 구워파는 언니가 오라고 손짓한다.
몸녹이고 일 시작하라는 언니는 집에서 끓여온 유자차를 따라주고 이어서 술병을 꺼냈다.
'오늘은 무슨술이예요. 언니?'
'감기가 심하게 걸린 것 같아서 머리 맑아지라고 가지고 왔는데 솔방울 술.'
'와아... 향기 좋으네요. 언니 때문에 좋은 술은 다 마셔봐요.'
한잔씩 마시고 안주는 밤새도록 무우넣고 고아왔다는 꼬치국물로 속을 덮혔다.
언니와의 인연은 삼년 전 지금처럼 추웠던 겨울날이였다.
몸이 얼어 서있는데 바로 보이는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김이 서려나와 뛰어들어갔다.
언니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는 듯
'많이 춥지요?' 술 할줄 알으면 한잔 할래요? 그럼 훨씬 덜 추울거예요. 이거 오년 전 캐어 담은 더덕주인데 몸에 열기가 오를거예요.'하며 한잔 따라주었다.
언니의 친절이 감사해 후로 짐을 펴고 난 후면 가끔씩 붕어빵을 먹으러 갔는데 그때마다 언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집에서 가지고 왔다며 쑥술, 포도주, 인삼주,를 한잔씩 따라주면서
'팩소주를 검은 봉지에 싸서 먹는거 보고 웬지 같이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했다.
'몰래 먹었는데 어떻게 봤어요? 그거 쥬스처럼 안보였어요?' 하는 내 너스레에
'내눈은 못 속이지.'했다.
붕어빵틀 앞엔 과월호의 신동아, 월간 조선, 수필집이 쌓여있었는데 화장실을 갈때 바라보면 언니는 손님이 없는 시간엔 책을 놓지 않고 보고 있었다.
참 기분 좋은 날이 있었는데 두해전 겨울,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는 거리에서 빵을 굽는데 오고 가는 사람 다 불러 빵을 주고 싶었다고, 그런 마음이 드니 빵틀이 휙휙 돌아가도록 힘이 넘치고 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 날 빵사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덤으로 몇개 씩올려드렸다고 했다.
'뭐가 그리 좋았는데요?'
'내가 빵굽는 포장마차 뒤로 이 길 감나무가지와 저 도로 건너 감나무 가지에 내딸의 서울 명문대 합격을 축하하는 플랭카드가 내뒤로 펄럭이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했을 때 언니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했고 뺨엔 붉은 피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언니의 아이들은 더없이 착했다.
시골학교라 남녀공학일텐데 중학교 사내아이도 고등학생인 둘째 딸아이도 학교 파하면 언니의 포장마차로 와서 한시간씩 물도 길어다주고 쓰레기도 치우고 또래아이들이 먹고간 자리를 치우는데 그 착한 얼굴이라니... 학교에서는 선행학생에 우등생인 최고의 모범생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 조차 그들이 사랑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언니의 지난시절은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위로 오빠가 한 분 계셨는데 늘 술에 젖어살았고 생활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고 그 때문에 배움의 길을 접고 일찍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가장역활을 했는데 술만 먹으면 언니를 두들겨 패는 오빠때문에 사는게 지옥같았다고 그래도 내 하나 뿐인 오빠라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니의 소원은 오로지 술 안마시는 착한 남자 만나서 시집가는거라고 했다.
그래서 시집온곳이 사방 산으로 둘러쌓여 해도 달도 늦게 찾아오는 첩첩산골 이였지만 때리는 오빠에게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살것 같았다고 했다.
시집살이 또한 대단해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밭에나가 일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단다.
착한 남편이 곁에 있어서...
지금 언니의 시어머니는 중풍으로 오래도록 누워계시다 치매가 왔는데
일끝나고 집에가보면 거동을 못한 시어머니를 위해 방에 넣어놓은 요강에 볼일을 다 보고 요강에다 빨래를 빤다고 옷가지를 모두 집어넣어 방바닥에 범벅을 해놓았다고...
삼일을 치우고 닦아도 냄새는 가시지를 않아 시어머니를 다른방에 모셔다놓고 밤새도록 소독하고 닦아 세탁한 이불을 깔아 놓고 나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똑같은 일을 번복한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르고 언니가 존경스럽다못해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웠다.
그래도 누구 원망하지 않고 다 내몫이다 생각하며 늘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언니는 이젠 내게 도인으로 보였다.
'그럼 언니 잠은 언제 자요?'
'이렇게 빵 굽다가 손님없을 때 서서 자지.'
더 이상 듣지않아도 지금 안정된 살림은 언니의 부지런함과 성실함과 더할 수 없는 공명함과 효성으로 받은 복일것이다.
지난 깊은 가을날 언니에게 초대를 받았다.
내가 좋아할 것같아서 융단처럼 폭삭하게 쌓인 낙엽을 동네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 한옆으로 길게 남겨놓았다고,
햇빛이 늦게서야 찾아오는 산자락에 숨겨진 집마당 한쪽에 그 햇빛을 잡아 낙엽을 뒤적이며 말려놓았다고 그 낙엽을 태우며 마당에서 오래묵은 포도주를 마시자는 낭만을 아는 멋진 언니였다.
그런데 언니의 마음씀의 반도 못따라가는 나는 그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다음장에 갔을 때 언니는 내가 오면 주려고 했다며 농사지은 고구마와 감자와 포도주 한병을 가지고 왔다.
'할말이 많았는데... 고구마도 구워줄려고 했는데...장작불에 커피도 끓여줄려고 했는데...'하면서 단 한마디 미움의 말은 비추지도 않았다.
가을부터 봄이 지나가는 5월 까지 거리에서 붕어빵을 굽는 언니는 여름에는 농사를 짓기위해 빵 굽는 일을 접었다.
'지난 겨울 내내 힘들게 서서 빵을 구웠으니 이제 여름엔 좀 쉬어야지요.' 했더니 언니는
'나는 빵굽는게 쉬는건데. 농사지면 새벽다섯시에 일어나 허리한번 못펴고 밤아홉시에야 집에들어와 시어머니 수발들어야 하는걸...
빵굽는 일이야 노는일이지. 이게 무슨노동인가 '해서 나를 부끄럽게 했던 언니.
붕어빵의 단골손님들은 대개가 노인분들이다.
이백원을 내고 빵을 하나 드시고 가도 언니는 밖으로 나와 부축을 하고 답답한 사람 하소연 다들어주고 얼굴한번 붉히는 법이 없다.
같이 하는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어도 나는 언니가 참 좋았다.
빵굽는 언니앞을 지나가는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손님이 없는 시간 책을 펴놓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단함을 물고 졸고 있는것도 아름다웠고
언니의 모든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더없이 훌륭했고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 생각하며 깨닫고 언니를 통해 뉘우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언니에게 작은 일이 일어났었던 모양이다. 아니 큰일일 수도 있겠다.
빵을 구우면서 하루에 천원씩 따로 모아놓았다가 일년에 몇번씩 아무도 모르게 읍사무소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냈다고 했다.
김장철이면 김장을 해서 어려운 이웃에게 돌렸고 작년 겨울 김장을 해가지고 새벽에 면사무소 앞에 놓고 나오다 숙직한 면직원이 본 모양이라 몇해동안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 언니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언니는 많이 불편해 했다.
그런데 엊그저께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 '천사를 찾아라'에 언니를 찾아왔던 모양인데 촬영시간까지 모든게 비밀에 부쳐져서 주위사람들은 다알고 있었지만 언니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언니는 다른사람에게 가야할 금메달이 내게 왔다며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이야기를 듣고 언니에게 박수를 쳤다.
'언니가 너무 좋은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다른사람들에게 언니를 알릴 수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일이예요.
언니같이 열심히 살고 다정한 사람이 제 곁에 있다는게 나는 너무 좋아요. 언니의 마음을 본 사람은 아마도 다 행복해 할거예요. 언니 정말 축하해요'
하지만 언니는 영 민망하다 한다.
언니에게 보내올 시선도 부담스럽고...(에이, 언니 바보다.)
언니,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요.?
사실 이말은 우리 둘이만 알고 있어야 되거든요. 누가 들으면 안되는데
그렇게 좋은 프로에 나가면 있잖아.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언니를 찾아오는데...
그리고 언니를 바라보는 마주하는시선들이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워 혼자서는 견줄수 없을 만큼 마음이 울컥, 울컥해지는데는 대책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다보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사는자체 순간 순간이 다 행복하고...
음...그리고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데.
있잖아. 매출이 열배이상 뛴다. 히히히.
나 속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