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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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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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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인가 봐요.


BY 손풍금 2004-08-25

올 여름 사실 얼마나 덥던지 무섭기 까지 했습니다.
여지껏 살면서 땀띠 라는것 한번 나 보지 않았는데 긴 옷입고 거리에 나 앉아 있다가 더위 참지 못해 반팔 입고 일했는데 땀띠가 나기 시작하는데...휴우
밤에 더워서 잠 안오지, 땀띠 난 팔 가려워 잠 안오지, 제 정신이 아닌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그렇다고 안 살수는 없는 일, 여름이 가면 곧 가을이 오지 않겠어요.
 
  요 며칠 전, 한 사 나흘.
비가 내려 장터에 앉아 하염없이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심심한 맨발을 파라솔 아래 내놓고 비를 맞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냥 속이 후련했습니다.
사실 장거리엔 평소 오분의 일도 안되는 장꾼이 나와있고 오가는 손님들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도란도란 파라솔을 치며 제각기 손님을 기다리느라 열심이였지요.
나도 그랬습니다.
어서 빨리 물건을 많이 팔고 집에 돌아가 방학이 끝나가는 아이들과 따뜻한 고구마나 옥수수를 쪄먹고 싶었는데 비 오는날 누가 그렇게 장을 보러 나오겠어요.
그렇게 삼일을 보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더군요.
 
  어제는 신탄장.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이마위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어요.
비가 오려는지 구름 몇점 골난듯 어둡게 흐르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미 와 있는 부지런한 장꾼들 틈에서 괜히 미안해 요란하지 않게 물건을 펴느라 힘이 더듭니다.
매일 하던 부채질 안하고 앉아있으니 팔이 편하네요. 히히
 
  첫번째 손님이 왔습니다.
'여름 내 땀 흘리느라 화장품 한번 못발라봤네, 더운데 고생 많이 했지요.
이젠 뭐라도 발라줘야 얼굴이 안땡기것지. 좋은 거 하나 골라줘봐요.'그렇게 시작한 첫 손님이 돌아가고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 내 난전 앞으로 둘러 앉는데 장사가 안될것이다 생각하고 전대도 안 차고 왔는데 손님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거 주머니에 돈 빠지것네.'걱정해 주는 손님도 있었어요.
사람 등과 머리만 보이니 뭔 구경거리 있나 지나던 사람들도 멈춰서 쳐다보고
(이게 뭔 일이래?)
  
  지난 봄 비 오는날 가계문 열면서 간판 안보인다고 파라솔 접으라고 단호하고 냉정하게ㅡ.ㅡ;  말하던 가계 주인 남자까정 나와서
'거, 머리 착 붙는 무스하나 줘봐요.'하고 큰소리로 말하는 통에 구경하던 사람들 가계주인아저씨한테 시선이 쏠리자 '여기 물건 좋아요.'라는 말까지 덧 붙여주고는, 휙~ 들어가 버렸다.
(이게 뭔 일이래?)
 
  뭐가 뭔지 모르게 갑자기 사람이 몰려드는 통에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 머리수도 한번 세어봤습니다. 엄청 많았습니다.
지나가던 이브모텔 미쓰김도 '언니~! 나오셨어요?'하고 반갑게 달려듭니다.
('이브모텔, 미쓰김'; 그 여자 이야기 카페;글 목록; 20쪽 참조. 절대 카페 선전 아님. 헤헤)
 
  그리고. 그. 리. 고.
어디서 어둡잖게 더듬 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스킨.. 얼...마...예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다 나는 잠시 착각 까지 했습니다. (내가 지금 공항 면세점에 앉아있는거 아닌가 하고...이젠 외국인 까정 손님으로 합세를 하고 들어오네.)
그리고는 '싼..거... 가장...싼...거..로 깎..아..봐요. (깎아 줘요. 도 아니고 깎아 봐요. 라니)' 더듬거리는 입을 바라보다 정신이 드는데 아~! 저 청년은 외국인 근로자 '브랑카' 친구였어요. 흐..
아무튼 얼마나 신이 나고 기분이 좋던지요.
 
  보세요. 뭐가 좋으냐 하면요. 가을에는 시골장 가는길에 코스모스가 많이 피거든요. 차량도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장터 찾아가는 길이 내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이렇게 손님도 늘어나구요. 그러니 매상이 오르면 맛있는 소주한잔 부담없이 마실수도 있고..기타.등.등...참, 거기다 해바라기 까지 줄 지어 피어있는 길을 지나가면 진짜 너무 좋아서...어떻게 해야 하나...말아야 하나...)
 
  아무래도 이젠 가을인가봐요.
제 자리에 끊겼던 손님들의 발걸음이 옮겨지는 걸 봐서는요.
흠, 흠, 그러고 보니 오늘 장터에서 아무래도 제 주머니가 가장 볼록한거 같아 기차역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변기위에 앉아 주머니의 돈을 다 꺼냈습니다.
접혀진 돈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기도 합니다.
구겨진 돈 쫙쫙 손으로 펴서 한장, 한장, 똑바로 놓습니다.
돈을 세는데 자꾸만 배가 불러집니다.
제 눈이 반짝거리다 흐릿해집니다. 돈만 봐도 눈물이 나네요. ㅡ.ㅡ;
이 놈의 돈은 세도 세도 끝이 없네요.
아무래도 오늘 너무 많이 번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