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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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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 지는날.


BY 손풍금 2004-06-11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장터로 가서 짐을 풀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손에 끼고 있는 목장갑으로 흐르는 이마의 땀을 쓱 딱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

대충 짐정리를 끝낸사람들 끼리 모여앉아 해장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느덧 술꾼으로 소문난건지 손을 흔들어 오라 하던지, 사람을 보내 오라하던지 불러 들인다.  마음 동하는 날은 둘러 앉아 순대국물에 소주한잔 들이키고 온다.

어제는 술이 술~ 술~ 넘어갔다. 등뒤에서는 땀이 흘러내려 옷이 젖어드는데 뜨거운 국물과 소주로 더위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무더위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 차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대어 앉았다.

화덕앞에 앉은것 처럼 후끈거렸지만 모처럼 두다리 쭉 뻗고 앉아 눈을 감았다.

요 며칠 사람과의 부딪힘으로 힘들어 시종일관 기운을 다 잃고 있었는데 어디 사람들 발길 닫지 않는 산골 개울가에 발가벗고 들어가 앉아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무그늘아래 계곡물에 발담그고, 들어가 어깨까지 물이 채이도록 앉아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질까.

어린 시절 개울물에 대한 추억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달리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왜 이리 맑고 차갑고 시린 물속에 몸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아, 그러고 보니까, 개울물에 몸담근 기억이 있다.

그것도 달빛아래서......

그것도 남자랑..... 에그머니나.

 

  결혼한 그해 여름 그러니까 17년 전 ,

남편은 한여름 밤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우고 은점다리 건너간 후에 한손엔 후레쉬를 들고 또 한손은 내손을 잡고 숲길을 헤치며 걸었다.

나는 금새 어디서라도 뱀이 지나갈것 같아 손만 내민채 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면 내게 다가와  등에 업히라고 했다.

남편의 등은 그때 참 따뜻했다.

은점 저수지를 지나 속리산 계곡 물줄기가 모여든 보에 내려놓고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물위로 쏟아졌다.

아직도 부끄러움이 남아있던 새댁은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 가끔 착했던 남편은 내손을 잡고 물속으로 들어가 나를 등에 엎고 수영을 했는데 개구락지 헤엄이라고 했다.

정신없이 와글 와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는 하늘에서 비추는 별빛이 반짝이며 쏟아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남편은 내게 잘 보라하고 여러유형으로 몸을 뒤집으며 수영을 하고 즐거워 했지만 옷벗은 새댁은 연신 수줍기만 했다.

더위가 비껴가고 나중에는 온몸이 떨리어 집에 가자고 하면 커다란 타올로 몸을 닦아주고 등을 내밀고 업어주며 달빛 내리는 숲길을 지나오면서 달개비꽃 덥썩 꺾어 내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여름을 보내고 다음해엔 마을 회관 다리 아래서 내 또래의 동네 새댁들과 함께 밤에 목욕을 했다.

가끔 어디선가 불빛을 비추어대며 짖궂게 몰려다니는 사내아이들 때문에 목욕을 하던 우리는 물속으로 몸을 숨기고는 했는데 집에가서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자기들도 총각때 그런 짓 많이 했다고 하더니 다시는 개울가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던 기억이 옛꿈속에 달빛처럼 내마음을 맑고 청아하고 시리게 하네.

 

  장사를 해야 하는데 땀이 쏟아지며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열망에 나는 끙끙 앓았다.

누군가 옆에서 약을 사다 주었다.

약을 먹고 전봇대 아래 앉아 있는데 자꾸만 꾸역 꾸역 눈물이 나왔다.

맑고 시린 물에 몸을 담구고 있으면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본연의 내가 되려나.

그도 아닐텐데.

날은 더워지는데 가끔 내 지나온 악몽속에 스쳐간 들꽃 같은 이야기가 풀풀 되살아 나는 오늘은,

벌써 유월도 열흘이나 지났네.

그런데 그 인간 생각은 왜 나는 건지, 젠장할~ 배알도 없네.

비나 확 쏟아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