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나무 대문위에 기와가 높이 올려져있던 오정목 수동집에서 나는 인쇄소를 하는 민숙이와 담장을 사이에 둔 앞집 광이와 해지도록 종이인형 을 가지고 놀다 은행나무집으로 들어가 소꼽장난을 하다가 다리건너 요셉이까지 합류하는 날이면 날이 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누렁이가 대문밑으로 머리를 내밀고 반가와 꼬리가 빠지도록 흔들어대는 마당으로 들어서면 긴마루에는 옆방에 사는 점쟁이할머니와 사범대학을다니는 멋쟁이 민이언니와 공장을 다녀오신 어머니와 큰언니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퇴근길에 낚시점으로 가 오늘도 밤낚시를 갈거라고 일찍자자 하시며 기둥위에 달린 달빛같던 불을 스위치로 내리던 어머니의 어깨위로 이내 별빛이 쏟아져 멀리 깜깜해진 골목길너머까지 아스라히 별빛이 뿌려지고 있었다.
학교가는길에 옥분이 할아버지가 하는 한약방 옆집에 편물집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내손을 잡고 색색이 온갖 고운 털실이 걸려있는 편물집으로 들어가 자주색 스웨터를 오래도록 입을수 있게 해달라는 당부를 놓치않고 맞추어 주었다.
열밤을 자고 오라했지만 나는 하루 빨리 입고 싶은 마음에 날마다 학교가는길과 오는길에 편물집 유리문을 열고 내 옷 다 만들었느냐며 아주머니에게하루도 빠지지않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사십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오빠들을 데리고 낚시를 갔고 고기바구니가 비어 돌아오는날이 더 많았지만 샘터에서 붕어배를 가르는 아버지곁에서 펌푸질을 하는 내게 부레를 떼어주며 가지고 놀라 하셨는데... 풍선처럼 동그랗게 부푼 부레는 민숙이와 광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해 나는 그때마다 우쭐대며 부레 들고 있는 손을 높이 들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검정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그시절에 하얀 카바 양말에 발등을 넘는 끈이 있는 검정 유리구두를 사들고 오셨던 어머니의 월급날, 지금도 잊을수 없는 국민학교 사학년 여름이였다.
운동화의 밑창이 더 부드러웠겠지만 새구두가 그리 폭신하고 가볍고 어디고 높이 뛰어오를것 같이 느껴졌던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일이다.
무지개를 자주 보았던 그 어린시절, 그 중 잊혀지지 않은날들은 내게 가장 기쁘고 설레이는 날이였기 때문인것 같았다.
며칠전 공주장에서 서울서 온 손님에게 선물을 받았다.
생일도 아닌데.. 정말 아무날도 아니였는데 남대문시장에서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었다는 검정알이 반짝거리는 목걸이 ,재클린비세트의 우아함과 단아한 상징처럼 느껴지던 갖고 싶었던 진주목걸이도 있었고 보라색 큐빅알이 박힌 목걸이도 있고, 화려한 브롯찌도, 예쁜핀과 머리끈..
선물상자를 받으며 나는 어린날 아버지가 손에 들려주었던 붕어의 부레를 받아들었을때처럼, 아침 저녁 등하교길에 빼꼼 유리문을 열며 "아줌마,내옷 다 만들었어요?"물었을때 "그래, 들어와 입어봐라"했던 편물집 곰보아줌마의 손에 들린 자주빛 스웨터를 볼때 크게 뛰어댔던 심장소리에 양손으로 가슴을 살짝 눌렀을때도 높아지던 설레임처럼, 어머니가 사오신 검정 유리구두를 신었을때 그때처럼 나는 설레여 어디고 높이 뛰어오를수 있을것 처럼 기뻤다.
상자에 담긴 보석들 언제 이런 예쁜것들을 몸에 지닐수 있을까 했는데 보기만 해도 머리에 손이 올라가고 목을 만지고 싶고 옷깃을 스치고 싶은 핀과 목걸이와 브로치.
"진짜가 아니라 미안해요" 했던 그녀의 목에 감긴 봄날 스카프가 나를 한없는 여유로움으로 감싸고 나는 장사를 하면서도 점점 몸이 가벼워져 저녁하늘을 바라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도 그리워져서 눈가가 젖어들어 잠시 장터 골목끝으로 돌아서 낯선집의 대문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