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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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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BY 손풍금 2004-03-21

  커피내음이 금방 흘러 나올듯한 '맥스웰향기' 사보를 뒤적이다 수평선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떠있는 숲에서 그만 눈동자가 멎고 말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바다를 품에 안은 포구의 넉넉함과 해안선 끝자락에서 해돋이를 볼수있는 당진은 맑은날보다는 흐린날 바다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흐린날은 내가 지독히 좋아하는날 아닌가.

읽는것만으로도 바다가 가슴을 덮어와 바다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38번 국도라 했던가...

심훈 선생님의 옛집인 필경사를 나와 작은 어촌마을 한진포구를 지나. 석조방조제를 지나치면 해변마을 장고항에 도착할수가 있는데 장고항 앞바다에는 들국화가 많다고 했다.

들국화 , 들국화 향이 좋아 며칠전 장에서 할머니가 직접 꺾어 말렸다는 구절초 두단을 사천원에 주고 사와 주방벽에 걸어놓고 씽크대 주변를 괜히 행주질 해가며 부지런을 떨었던것도 흔들어야 가까스로 새어나오는 들국화향을 맡기위해서였는데 섬에 들국화가 지천이라니, 얼마나 가슴설레는 일인가.

 

'내일 비많이 온다 하는데 당진, 해변마을에 드라이브 가자'하고 핸드폰을 열고 조시인에게 문자를 넣었는데 회답이 오질 않는다.

전화를 몇차례해도 받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어디 놀러갔나보다. 나 떼어놓고 저희들끼리. 의리없이,,, 울까부다.

나도 어디가고 싶다. 참말로 날씨좋으네.

날씨는 좋은데 장사가 안된다. 심심하다. 커피향이고 나발이고 갑자기 책보기도 싫다.

활자가 개미같은게 지루하다.

하품을 하다 앞에 있는 아저씨하고 눈이 마주쳐 민망해 모자챙을 앞으로 쑤욱 내렸다.

 

"봄날엔 주말과 휴일에는 다들 놀러다니느냐고 장에 사람이 안나와요.

화장품 좀 팔았습니꺼?"하고 묻는 아저씨는 가방을 진열해놓고 있는데 처음보는얼굴이다.

"아니요. "

 

"그렇게 얼굴도 안보이게 하고 앉아있으면 조는줄 알고 손님들이 그냥 갑니더,

장사가 안되더라도 얼굴을 내놓고 있어야지"

(남이사. 별걸 다 참견하네)

대답이 없자 아저씨는 오던길로 되돌아가 제자리에 앉는다.

 

나는 일어나 바지를 툭툭털고 장구경을 하기로 한다.

한바구니에 오천원하던 딸기가 이젠 이천원으로 내렸지만 팔려나가지 못하고 주인의 애꿎은 눈초리에 시들해지고 ,

푸릇푸릇 봄기운을 몰고 오던 냉이도 풀이 죽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손수레위에 올려진 작은화분들만 화들짝 졸음을 쫓아내고 생기를 부른다.

소방소를 뒤에 둔 다리건너에 묘목파는것을 본적이 있어 다리쪽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종종 아는얼굴의 장꾼들을 만나게 된다.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몹시도 반갑다.

다리께 다다를 즈음 걸음이 빨라졌다.

 

오가피나무, 자산홍, 헛개나무, 목련나무, 감나무, 호랑가시나무, 오엽송, 꽝꽝나무,

꽝꽝나무??, 팻말에 써놓은 나무이름을 다시 보니 여전히 꽝꽝나무 다.

집 담장을 없애고 담장대신 이 나무를 꽝꽝심어 놓으면 아름다운 집이 될듯 싶어 꽝꽝나무인게 틀림없다. 히힛.

이다음에 나는 탱자나무를 담장대신 심으려고 했는데 꽝꽝나무를 꽝꽝 심을테다.

꽝꽝 거리면서,

 

봄날 불어온 심술이 어느정도 꽃나무가 대신 거두어 다독거리고 마음이 조용해져 내자리로 돌아가는데 내 물건 앞에 아주머니 두분이 앉아계셨다.

이제 한달 된 공주장인데 단골이 되신 아주머니의 모습이라 반가와 뛰어왔다.

"오셨어요?"

"어디갔다 왔어? 많이 기다렸는데."

"죄송해요.장구경하고 왔어요."

"내 물건을 안팔고 장구경만 다니면 되나. 죄송하면 깎아줘야 해"

"네에"

두분 아주머니께서 이것 저것 고르시는데 옆에 앉으신 아주머니는 처음 오시는것 같은데 아주 멋쟁이시다.

얼굴을 바라보니 아주머니가 아니고 할머니시다. 아주 곱게 세월을 흘러보낸 멋쟁이 할머니,

머리는 온통백발인데 빨간바지에 빨간조끼를 입으시고 빨간 구두를 신으셨다.

"빨간 구찌빼니 있어?"

"구찌빼니요? 아이고, 립스틱 말씀하시는거지요?" 

"그려" 하시는데 웃음이 흐르고 할머니께 립스틱을 골라드리고 계산을 하는데 옆에 계신 단골아주머니께서 내게 뭐라 눈짓을 하는데 애가 달으셨다.

내가 시선을 비껴가자 내 바지를 잡아당기시며 말로는 뭐라 하지 못하고 눈을 찡긋거리고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무언의 말씀을 하시는데 표정을 보니 옆에 앉은 멋쟁이 할머니가 화장품을 집어넣었다는 것 같다는 그런 말이였다.

나는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워 못본척 외면하고 화장품을 싸드리는데 이번엔 아주머니께서 뒤쪽으로 팔을 돌려 내 팔을 꼬집는다.

그리고는 내 눈을 쳐다보면서 그 할머니의 주머니를 손으로 가르킨다.

아주머니를 바라보다 설사 그렇다 해도 할머니의 주머니를 볼 자신도 없고 마음도 없어 못본척 다시 봉투를 전해드리고 일어서는데 그 단골 아주머니 한숨을 푸욱 쉬면서 "아이고 등신"하신다.

...............

이번에는 멋쟁이 할머니가 부산스러워진 그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단골 아주머니는 멋쟁이 할머니가 쳐다보든 말든 할머니의 주머니를 가르키며 나를 바라본다.

이 상황에도 모르는척 넘어간다면 나는 진짜 등신이 될것 같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저기 할머니.. 죄송한데 주머니 좀 잠깐 봐도 될까요?" 하는 내말에 멋쟁이 할머니 나를 멀뚱하니 쳐다보다가 " 내 주머니를? 왜?"

 

"글쎄요. 그냥 잠깐만요."하는데 내 난처한 표정에 멋쟁이 할머니께서 금방 사태를 파악한듯 했다.

일어 서시고는 주머니를 죄다 열어보는데 그 단골아주머니가 가르킨 주머니에서 립스틱이 나왔는데 그 멋쟁이 할머니가 사용하던 루즈였다.

아마도 색깔을 보시느라 잠시 꺼내 비교해보았다가 다시 넣은모양인데 우리 단골아주머니께서 내 물건을 넣은걸로 오해하신게 분명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 얼굴이 뜨거워졌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떻게 하지요. 아이고, 죄송해요. 이일을 어떻게 해요.큰일났네요,"

무조건 고개 숙이고 백배사죄를 하는데 할머니 갑자기 나를 옆으로 밀고는 단골 아주머니를 향해 화를 내며 험한말을 쏟는데 나는 할머니앞을 가로막고

"제 잘못입니다. 할머니, 용서해주세요" 하고  단골아주머니를 가시라고 떠밀고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할머니 부디 노여움 푸세요. 할머니"

할머니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는듯 하시더니

"애기엄마가 무슨 잘못여? 나는 왜 그렇게 그 아줌마가 애기엄마를 쳐다보고 눈을 깜빡 거리나 눈병났는줄만 알고 있었네. 괜찮어, 괜찮어.그럴수도 있겄지"

"잘못했어요. 제 눈으로 보지도 않고는..용서해주세요. 그 아주머니는 저를 생각하시고는 그러신거예요. 제가 어리숙해보이니까 아마 그랬나봐요."

'나 이 구찌베니 안살텨, 이 빼니 바를때마다 기분나빠서 어디 발라지겄어?"하신다.

"네, 돈 내드릴께요,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는 한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아녀, 그냥 바를께. 내가 가야 애기 엄마 마음 진정하것재, 내 얼굴 잘 봐두었다가 다음에 오면 싸게해줘"하시고는 가신다.

 

할머니 뒷모습을 보고 얼마간은 정신나간듯 연세도 높으신 어른께 내 무슨짓을 했나,

...........................할머니,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눈물나게 후회했다.

 

휴일 봄날 햇살은 어찌나 다정하게 따사롭던지 노오란 꽃물 같았는데

내앞에 노오란 후리지아 꽃다발 들은 아가씨가 서있었는데 나는 비틀거리며

"뭐 필요한 물건 있으세요?"하고 일어서자

"...저, 책 잘 읽었어요. 이 꽃 받으세요. 기운이 없으신것 같으세요"

 

"......아.. 아니예요. 고마워요. 예쁘네요. 제가 꽃을 아주 좋아해요. 후리지아는 더욱.."

그 아가씨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서 아까 꽃나무가 주었던 그 위로를 대신했는데

 

오늘,

뭔일이 있긴 있었는데...

지금 화병에 꽃을 옮겨 놓는데  도대체 뭔일이 벌어지긴 했는데 봄햇살이 하도 감미롭고

투명하게 노오란 빛을 쏟아놓기도 해서 내 정신이 혼미해진건지.

분명 뭔일이 있긴 있었는데.. 히히, 웃어도 되는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