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머리 질끈 동여매어 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난 말총머리 희숙씨는 여름을 제외한 봄,가을, 겨울을 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파는 영동댁이다.
두해 전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미끄러질까 겁이 부쩍 나 조심 조심 핸들을 돌려 영동장에 도착했는데 쌓인눈속을 달려오느라 긴장이 풀리지 않아 물건도 내리지 못하고 몸이 굳어 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포장마차안으로 들어가 방금 구워낸 붕어빵하나를 들고
"미안해요. 저 술한잔만 할께요."하고 검정비닐봉지안에 쌓인 팩소주를 들이키는데 어묵국물을 떠주면서 "천천히 드세요"했던 그녀 희숙씨는 그 다음 장에 내가있는곳을 향해 포장마차안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는 반갑게 손짓을 했다.
"이거 한잔 드세요."하고 건넨것은 삼년묵었다는 쑥술이었는데 당시 어깨와 고개가 잘 움직일수 없이 통증이 왔었는데 술을 받아마시고는 고개도 휙휙 돌아갔고 (마징가 젯트 처럼.^^) 어깨와 등을 결리는 아픔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거, 참 희안하네요. 등을 조이던 아픔이 순식간에 없어졌네,
고개가 삼백육십도로 자유롭게 돌아가는것 같으네"하고 한바탕 웃었는데
"지난번 술마시는데 내가 다 미안하더라구요."한다.
"왜요? 저는 장사하는데 혹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나 싶어서 되려 미안했는데.."
"술마시는 대접을 못해서 미안했지요"하는 그말에 희숙씨 얼굴을 다시 한번 올려보았는데 그녀는 얼굴이 발그랗게 상기되어 "딱 한잔만 더 마시고 장사합시다."했던 그녀에게 나는 손사레를 치며 마다하자 "저 좀 축하해 달라고 드리는술이예요"
하며 자신의 포장마차뒤로 영동장거리 도로를 가로질러 프랭카드가 쳐져있는 곳을 가르켰다.
그곳엔 "축, 이화여대 합격, 김 소희"라고 써있는 프랭카드가 칼바람에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내 딸이예요. 작년에도 서울 시립대 합격해서 크게 붙었었는데 올해 다시 붙었어요. "
"아.. 축하해요. 그래요. 우리 한잔 더 합시다. "그래서 술을 세잔이나 마시게 되었는데 그날 물건을 팔면서 찾아온 손님들이 원하는대로 깎아주면서
"깎아드릴테니 그 돈으로 저기 영동에서 제일 맛있는 붕어빵 사가세요.
그리고 축하한다고 말해주세요. 그집 딸이 명문대에 합격을 했데요"하는 말도 순전히 술김이라고는 볼수없게 그녀의 고된삶이 일순간에 녹아내리고 살아가는일에 기운을 더했을것 같아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후로 그녀는 장날마다 직접담은 과일주를 들고와서 한잔씩 나누었는데 내가 남기고 오는것이라고는 "오늘 많이 팝시다"하는 멋있는 척 하며 오래된 장꾼 말투를 흉내내는일이 고작이였다.
여름이 시작되자 "여지껏은 잘 쉬었는데 이제 농사짓고 일좀 하고 가을에 나올게요"하는 그녀에게
"여지껏은 잘 쉬었다구요?
"그럼요. 편하게 쉬면서 돈벌었으니 이젠 일좀 하고 와야지요."
"으윽...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좋은 약술들은 끝인가요?"
"걱정말아요. 내가 여름 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약초 캐다 술 담아 가을에 내가지고 올테니 그때까지 혼자 막소주 마시지 마요/ 약속해요." 했던 그녀의 말처럼 나는 나직하게 울적함이 찾아올때 혼자 마시던 소주를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영동장에 가는날은 만나면 기분 좋은사람이 있어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가볍다.
헛간에 놓아 익혔다는 한개만 먹어도 배부를 홍시감도 틀림없이 가지고 올것이고
새벽부터 국물을 내어 끓여온다는 속이 시원한 꼬치국물에 무슨술을 내올것인가를 생각하며 괜히 입맛다시게 했던 지난장엔
"이번 일요일에 우리집 김장하는데 놀러와요.
사방이 산으로 둘러있어 해도 더듬거리며 찾아오고 들어오는 초입에는 낙엽들이 발목까지 쌓여 융단을 밟고 오는것 같아요.
언젠가 낙엽타는 냄새가 좋다고 해서 내 마른낙엽 많이 모아놓았는데 불도 놔줄께요. 선지국도 끓여줄께요. 감추어놓은 비장의 술도 있어요."
"비장의 술이라면 혹시 밤이 무서워지는 뱀술 아닌가요오? 히히히"
"뱀술일수도 있고 산삼주일수도 있어요"하고 오라 청한것을 여행사를 하다 장사를 해보겠다고 길에 나선 친구를 도와주느라 가지를 못했다.
오늘 물건을 펴자마자 포장마차안으로 들어가니 솔내음이 솔솔 나는게 솔술이라 내놓는다.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 어떻게해요. 나는 줄게 없네."하니
"이왕 얻어먹는거 더 얻어먹을래요?"하며 보자기에 꽁꽁 묶은 김장김치를 내놓은다.
"일하느라 시간 없을텐데.. 이거면 겨울 나겠지요? 맛있어요. 우리 배추 김치"
그냥 멍청히 먹을거 다먹고 입 쓱 닦고 "진짜 어쩌지요? 큰일났네."
"큰일나긴.. 나중에 돈 많이 벌걸랑 나하고 같이 사교춤 추러 다녀요"
"잉?? 사교춤요? 아이고 ..히히" 그러고 보니 언젠가 취미가 사교춤이라 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하고 웃은적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 춤을 추러 다니자 하네..
"맛있게 먹을께요. 사교 춤은 좀 그렇고 차라리 살사댄스는 어떨까요? 멀쩡한길도 혼자 툭툭 넘어지는데 살사춤 추다가는 허리꼬여 아무래도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책임질래요? 그러니 나한테 당체 춤얘기는 하지 맙시다. "
좋은사람들이 곁에 함께 하고 있는것으로 추위는 찾아오지 못할것 같다.
자리로 돌아오니 김장는 했느냐는 걱정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김장은 했니?"
"김장?, 너 김장김치좀 안사갈래?"
"왜, 김치 담아 파니?"
"내 할줄 아는게 화장품 파는거 뿐이 더있니.너, 루시아 언니라고 알지?
인터넷에서 알게된 언니, 그 언니가 벌써 몇해째 김장김치 종류대로 담아 보낸다.
거기다가 나 일하느라 힘들다고 된장을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된장찌개 끓일때 두부만 썰어놓으면 되게 모든 양념다 해서 보내는데 그 된장찌개 먹어본 사람들 한마디로 말해 된장찌개맛에 넋 빼고 간다. 너무 맛있다고.내가 힘들긴 뭐가 힘드니, 어려운사람 찾아다니며 봉사활동하는 그 언니가 더 힘들지..
"햐아. 너는 좋겠다."
"..응..좋아."
"그리고 내가 너한테 이야기 했잖아. 톨게이트비 천칠백원 없어서 난감했던일,
그날 그 톨게이트 소장님이 나를 기억해내고는 그 다음 장에 김장김치하고 과일하고 담아주시고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
"별일이다. 돈없이 잡혀들어갔는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오냐?"
"그러게..나도 별일이다.그리고 단골손님들도 김장김치 담군것 맛보라고 갖다주시고 함께 일하는 시장분들도 담아오시고 .. 나 김장김치 아무래도 넘쳐서 내다 팔아야되겠다"
"물건팔아주고 김치 담아오고.. 햐아.너.. 좋겠다."
"응. 좋아"
"그래, 진짜 좋겠다, 야아. 부럽다."
"부러워? 그럼 부러우면 나하고 바꿔 살아볼래?"
"..........."
"(심술부려봐야지.ㅎㅎ) 너 부럽다며.우리 한번 바꿔 살아보자."
"..... 그냥 부럽다는 거지. 뭐"
"그래.. 맞아. 나 지금 하늘 올려다 보고 하느님한테 감사드린다."
"뭐라고?"
"나 이제 행복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하느님, 안 미워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