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시작된 오늘.
아이들은 아직 긴잠을 자고 있고 아침밥 먹으라고 깨우려 다가가다
한없이 편한 표정을 지닌채 고른숨을 내쉬는 아이를 차마 흔들지 못하고
메모를 해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장터를 찾아들면서 오늘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있어야지 혼자 다짐을 수없이 했습니다.
(저 여자는 추석전날도 나오네..하고 흉볼까봐요.ㅡ.ㅡ;)
톨게이트를 벗어나 통영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는데 그만 귀성객차량행렬에 엉켜 정체되고 말았어요.
저는 장사하러 나갔는데 마치 고향을 찾아드는 사람처럼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그리운 선생님,
운전석에 앉아있으면서 불쑥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습니다.
나도 부모님이 살아 반겨주는 찾아갈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부러운 마음이 길어진 차량행렬만큼 물고 늘어졌습니다.
지난간 추석이라는것이 사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일들뿐이였기에 바로 고개를 휘젓고는 노래를 틀었지요.
어느PD분이 제 글을 보고 녹음해서 보내주었는데 저는 요즈음 이노래를 아예 들고 다닙니다.
명절이면 연례행사처럼 치루는 일이라는게 그 남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고향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벌어질 그 일이라는게
이유도 모른채 밤새 휘둘림을 당하고 새벽이 오면 깨진 유리조각 사이에서 코를 골고 잠이 들어있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나는 저 남자가 바람나서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넘기며
찢어진 옷을 갈아입으며
통증이 느껴지는 몸을 짐승처럼 들고 일어서며
방바닥 여기저기 뽑혀있는 머리카락과 깨진 그릇들을 치우면서
몇조각의 파편들이 발바닥과 손바닥을 파고 들면
어지러운 머리를 들고 베란다 문을 열면 새벽공기가 비웃듯 서있었습니다.
아. 저 아래....
골목길을 돌아서는 가로등 불빛 아래 친정어머니가 서계셨는데 아마 밤새도록 그러고 계셨을지도 모를일입니다.
그리운 선생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나쁜피처럼 빠져나가지 않고 제속에서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편한 날들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적어도 올 추석만큼은요.
그렇다고 고개 끄덕여주세요.
다른날보다 한시간반이 더걸린 장터에 도착했을때는 양말장사와 아동복장사 그리고 저, 이렇게 서로 바라보기 민망할만큼의 사람들로 물건을 펴고 앉아있었습니다.
모두다 고향으로 찾아올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송편을 빚거나 전을 붙이고 맛난 김치를 꺼내들거나 잘익은 과일을 담고 있고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대문을 열고 있겠지요.
나는 앉아있는지 세시간이 지나 물건을 챙겨 차에 넣는데
옆가계 젊은여자가 나와서는 "가시게요?'하고 묻습니다.
"..네, 가야할것 같아요. 가서 송편 빚으려구요"하는 괜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리운 선생님,
새벽이 열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으례껏 밤이면 빼놓는 전화코드를 어젯밤에 깜빡 했던 모양입니다.
무심코 받아든 전화는 그 남자입니다.
습관처럼 행해지는 욕설, 수화기를 들고 끊지 못하는 나,
언제일어났는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내옆에 앉습니다.
두꺼운 옷을 찾아입으라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멀리가 있자. 좀 멀리..
그리운 선생님.
올 추석엔 보름달을 볼수 없다지요.
하지만 전 이미 제 텅빈 마음안에 보름달 하나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소원을 빌어봅니다.
"제게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할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