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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모님~!


BY 손풍금 2003-08-18

키에 비해 유난히 큰 구두를 신고 다닌다 싶은 김파는 아저씨,

장터마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주 친절하게 찾아와 인사를 하신다.

그리고는 "사모님, 많이 파셨습니까?"한다.

그 어감이 "싸모님~ 춤한번 추실까요?" 하는것 처럼 느끼하다. (푸힛~ 죄송~!)

 

"사모님은 무슨.. 아줌마라고 부르세요"하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싸모님이 좋지요"하던 김을 파는 아저씨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누가 여름에 김을 살까. 

봉투에서 내어놓으면 금새 습기가 차서 고소한맛이 다 없어지고 눅눅해지는것을...

 

그러던 어느날.

씩씩하게 "싸모님! 그동안 장사 잘하셨습니까?"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김파는 아저씨였다.

한손에는 구두약을 다른한손에는 구두솔을 들고 나타나서는

양복차림의 아저씨가 지나가면 놓치지 않고

 

"과장님, 구두닦으세요"하고 달려들면 지나가던 아저씨의 뿌리침에도

바지가랑이 붙들고 놓치 않는다.

그 누구나에게 과장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참 인상적이다.

뿌리치고 발 안잡힐려고 폴짝뛰던 아저씨도 과장님이라는 소리에

"참. 내원.. 흠흠.."하시고는 "그거 얼마요."의젓하게 무게잡고 산다.

왜냐하면 과장님이라니까..히히

 

농약사러온듯 수더분한 아저씨가 지나가면

"이장님, 멋장이 이장님, 구두닦으세요"하고 또 바지자락을 잡으면

손까지 휘두르며 비껴가다 기어이 구두약이 흙묻은 구두위를 재빠르게 지나치면

금새 번쩍번쩍 광이나고 이장님이라 불리운 아저씨는

 

"허, 참, 구두약 하나 주오,신통하긴 하네."하고 점잖게 말씀을 하신다.

나는 그 광경을 안보는척하고 몰래몰래 볼거 다 본다.

똑바로 쳐다보면 김파는 아저씨가 혹시 무안해질까봐.

아니 사실은 아저씨가 민망해하는걸 보는 내가 더 무안해질꺼같아서이다.

어쩜 저리도 변죽이 좋은지 신기하다.

 

여름이 다 갈 무렵 구두약을 팔던 아저씨는 부채를 가지고 나타났다.

부채는 한개에 천원이다.

올여름 더위는 손에 꼽을 몇날이였음에 아저씨 부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옆에서 가방파는 언니가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데

그언니는 자꾸만 "오늘 부채 만원어치도 못팔았을텐데 밥먹는것도 미안하다.

저 아저씨는 오늘 밥값도 못했을텐데. 우리만 먹어서 어떡한다냐.."하는데 내 등도 함께 따갑고 미안해진다.

도시락 뚜겅을 덮는데 등이 시원하다.

그 아저씨 언제 왔는지 부채로 가방언니와 내 등을 부쳐주고 있다.

 

"싸모님,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하는데

나는 아저씨의 큰 신발을 보고 웃음이 쿡쿡 나오고 가방언니는

"거 좀 장사 잘되는거 해보세요. 맨날 안되는거만 하지말고...주위사람까지 심난하네 "하니까

 

"나는 안되는거 해도 되요. 워낙 열심히 하니까,

우리 싸모님들이 잘되는 장사해야지요. 안그러요?

더운데. 힘드니까. 이부채도 하나 사시고.. 더우니까 부치면서 장사도해야지."하고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그래서 어찌해서 하나씩 부채를 사게되었는데 "싸모님~!" 그 소리에 홀려서 산거이 틀림없다.

부채를 손에 들고 보니 여름이 다 지나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