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59

안경 할머니


BY 손풍금 2003-08-08

 

장날이면 장터를 찾아드는 장사꾼처럼 항상 만날수 있는 할머니가 있다.

한쪽발이 불편해 검정고무신이 벗겨질까 싶어 찢어진 면조각을 신발위로 질끈 동여매고 다른 한쪽발로 걸음을 옮기면서 어렵게 어렵게 몸을 움직이는 안경할머니다.

 

"집에 계시지 뭐하러 나오셔요." 하고 아무런 상관없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걸이가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를 향해 던지는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안경할머니는 나오셔서 옷장사 할아버지 의자에 앉는다.

안경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옷장사 할아버지가 다가와주길 바라는 눈치지만,,,,

 

사실, 어제 밤새도록 비가 퍼붓고 오늘 새벽녘까지 비가 내릴때

나는 창문을 열고 하늘이 잦은비로 젖어서 뚫려버렸나하고 고개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 손을 쑥 내밀고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펴니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비가 후두둑 떨어져 내려 한편으로는 잘되었다 싶은 마음으로 창문을 닫았다.

요 며칠동안 일이있어 날마다 서울을 오가느라 몸이 많이 피곤해 있는데 하루쉬기에는 더할수 없는 좋은날이라 아이들 학교 가고 창문을 모두 닫고 방안을 어둡게 만들고 밀려오는 잠을 청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키 어렵게 구름이 거두어지고 햇빛이 쏟아졌다.

일어나 시계를 쳐다보니 정오를 한시간 남겨놓았다.

밖이 조용한것이 비가 그친것 같아 다시 창문을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세상이 되었다.

햐아.. 온세상이 세수한듯 맑음. 서늘함, 푸르름,,,

그늘, 무채색, 진초록의 무성과 고요 이 맑음이라니..

급히 세수를 하고 오랜잠에 부어버린 눈을 하고 옥천장으로 향했다. 나만 늦은줄 알았더니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 나왔다 하며 장사꾼들이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펴고 있다.

 

항상 제일 먼저 내 시선과 마주치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옷장사 할아버지와 그 아드님 얼굴 표정이 다른날과는 다르게 어둡다.

슬쩍 그 아드님께 다가가 "할아버지 기분이 안좋아 보이세요, 무슨일 있으세요?" 하니

"새벽에 그렇게 하늘이 뚫린듯 비가 쏟아지는데 나가자고 하자나요.

일기예보에 오전에 비가 그친다 했으니 나가서 기다리자고 하길래 내가 그칠 비가 아니라고 좀 쉬었다 천천히 나가자고해서 좀 전에 나왔더니 시장에 오는 내내 게을러서 손님 다 놓치겠다고 하시며 아버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 " 한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나하고 앞에 있는 노가리 파는 아줌마하고 웃음이 나왔다.

괜히 ,, (맞는말이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내 옷을 옷걸이에 진열하면서 아무 말씀 없는데 아드님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나신듯하다.

그러니 안경 할머니가 오신것을 반겨 주시겠는가..

 

안경할머니는 무의탁 노인이다.

가족은 있지만 가족에 의해 버려진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옷장사 할아버지는 힘들테니 쉬었다 가라고 의자를 내놓으시고는 했는데

할머니께서 장날마다 찾아오셨다.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의 등에 짊어질수 있는 가방을 사서 걸어 드렸다.

걸음걷는것도 힘드니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것은 무리라고 선물한 가방안에 과일노점하는 아저씨가 팔다 남은 사과, 딸기, 토마토를 채워주고는 했다.

그러면 옷장사 할아버지 아드님이 집에 돌아가는 차비하라 하며 천원씩 주머니에 넣어드리고 붕어빵도 사서 가방에 넣어주었는데,

오늘은 과일노점아저씨도 비가 와서 그런지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할머니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말을 건네지 않는다.

어린 꼬마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안경할머니곁을 지나면서

" 어휴...냄새, 엄마 할머니한테 냄새나,"하고 코를 막고 지나간다.

꼬마아이의 엄마도 코를 쥐고 비껴간다.

의자에 앉아있던 할머니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진다.

그래도 옷장사 할아버지는 안경할머니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않고 옷을 건다.

할머니의 시선은 오로지 옷장사 할아버지를 따라 다닌다.

나는 할머니곁에 다가가 차비를 손에 쥐어주며

"비 다시 쏟아지기전에 집에 가세요. 할머니"하니 시무룩하며 일어서는데

지팡이가 미끄러져 하마터면 할머니가 넘어질뻔했다.

다시 지팡이를 고쳐 잡으신 안경할머니가 할아버지 앞으로 지나가면서 쳐다봐도

옷장사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계셨다.

 

노가리를 파는 아줌마와 나는 또 나오는 웃음을 참고 '어서 가세요."하는 손짓을 하였더니

할머니도 입을 꾹 다물고 걸어간다.

비가 이젠 그만 왔으면 좋겠네. 제발 장사좀 하고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