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건너에 앉는 할머니께 아까부터 신경이 쓰인다.
아침나절 할머니는 밭에서 따가지고 온 콩을 까고 계시다 내쪽을 향해
"일루와봐. 새댁, 어여, 일루와봐"
"왜요?"하고 다가 가니
"이거말여, 이 콩하고, 깻잎하고 옥수수 다 팔면 얼마치나 되나 셈 좀 해봐"하셨다.
"콩이 한사발에 이천원, 깻잎이 두묶음에 천원, 옥수수가 한묶음에 이천원이면
다 팔면 삼만 이천원요" 하니
"그려, 맞어, 내한테 지금 사천원있으니께 다팔면 삼만원이것제."하신다.
"아니요, 다팔면 삼만 육천원요"하니
"아이고, 내정신좀 봐. 맞어, 삼만 육천원"하시며 반토막난 옥수수를 주신다.
"먹어봐, 그거 새벽에 따서 찐거여, 구수혀, 맛있당께,
서울간 우리 손자들이 오면 남어나지도 않어,
다음주에 온다니께 부지런히 팔어서 용돈이라도 줘야지"하며 흐뭇해 하신다.
긴 장마가 끝나고 나니 숨어있던 해가 얼만큼의 햇빛을 쏟아내는지 머리가 벗겨질만큼 뜨겁다.
지난 영동장에 정신이 없어 파라솔을 놓고왔다가 오늘 와보니 파라솔이 없어졌다.
설마하니 계단밑에 세워둔 파라솔을 누가 가지고 갈리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없어지고 나니 종일 햇볕아래 서있던 이상으로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어디쓰려고 가지고 가나..색도 바래고 아주 오래되어 다 낡아버린것을...
눈에 띄는대로 우산 두개 펴서 화장품에 쏟아지는 햇빛 가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느라 오후한나절 보내고 있는데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허겁지겁 다가와서는
"아무래도 내가 돈을 잘못 받은거 같으네, 팔기는 많이 팔았는데 만원짜리도 두번이나 받았는데 왜 한개밖에 없고 돈은 다 이거랴?,
콩 네번이나 팔고 깻잎 세봉다리하고 옥수수는 다섯봉다리나 팔았는디, 새댁, 계산 맞나 살펴봐줄텨,"
하는데 돈을 세어보니 만사천원이다.
"할머니 잘못 거슬려 주었나보네요,"
"그렇치? 내 정신좀봐. 아까 그 애기엄마한테 더 주었나베, 정신을 쏙 빼놓고 가더니"하시고는 세상이 다 무너진듯 주저 앉으신다.
"할머니, 점심 잡수시고 하세요,
저 뒤에 가면 도토리묵 한그릇에 천원씩 하는데 있어요,
그거 잡수시고 정신좀 챙기시고요, 제가 봐드릴께요"해도
"아녀, 빨리 팔고 집에 가야혀, 새벽부터 밭에 가느라 우리 영감 밥도 못챙겨줬는디
내목구멍으로 뭐가 넘어가겄어, 시방"하신다.
할머니 자리로 돌아가시고 나도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 정리해봤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훨씬 나아진 매상이다.
단골손님도 늘어가고 새로 찾아주는 손님도 하루하루 늘어난다.
생각만해도 금새 부자가 될것 같다.
아, 흐뭇해, 히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 앞에 놓여진 물건이 다 팔렸다.
할머니는 돈을 보자기 위에 다 꺼내놓고 세고 또세고 또세고,,,
할머니쪽으로 다가가
"할머니 다 파셨어요?"
"응, 다 팔았는디 왜 돈이 비어? 아무리 세어봐도 이만이천원뿐이네,
내 잘못세었나, 새댁이 한번 세어봐"
하고 건네는데 두번이나 세어봐도 이만이천원이다.
"할머니, 또 잘못 계산했나봐요. 아이고"
"그러게, 아까 그 요망한것이 내 혼을 다 빼놓고 가더니 더 가지고 갔나벼"하고는 분해하신다.
금새 화냄을 접고는 "그래도 요것이 어디여, 하루종일 땅을 파봐, 누가 돈백원이라도 주남"하고는 바지를 열고 그 속바지를 열고 옷핀을 따서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는다.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는
"이렇게 해야 안잊어버려, 정신이 없으니께, 흉보지마러"하시며 빈 다라이를 들고 일어나신다.
"흉보긴요, 정신없기로 치며 저도 매한가지인데,
할머니 뒤 따라가는건 시간문제예요."하며 바라보는데 유난히 할머니의 몸빼바지가 풍성해보이긴 하지만
오늘 못주무실건 뻔한일... 셈하지 못한돈에 대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