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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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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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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과 빨간색


BY 손풍금 2003-07-08

 

노란색과 빨간색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노란참외가 용달트럭 적재함 가득 실려있다.
내가 앉은 맞은편 도로변에 참외실린 차가 서면 마치 어디선가 다 보고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듯 단속경찰이 호각을 불고 나왔다.
그렇게 반복되었던것이 벌써 네차례다.
일부러 참외 장사하러온 사람만 단속나온듯 호각소리에 쫓겨가 한바퀴돌고 다시와서 세우면
또 왔느냐는듯 나타나 호각을 불어대고 이쯤이면 장사하러 나온사람 지치기 쉽상이다.
장사를 하러나온 금련씨는 참외잔뜩 실린 차에 남편을 남겨놓고 내곁에 와 앉는다.
"언니야. 장사하기 왜 이리 힘드노,
언니도 이렇게 힘들었나? 내사 참말로 더러버서 못해먹겠다"하는데 지칠만도 하지
그럼 누군들 지치지 않겠나.
" 쉬운일이 어디있어. 다들 그래, 누구라도.."하는 내말에

"내가 노란색만 보면 지금도 기겁을 하지 않나,
얼마전 딸이 우산사달라고 해서 함께 갔는데 아이가 노란우산을 고르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안사준다고 하고 와버렸잖아.
내 오죽하면 개나리꽃을 다 싫어하겠나."

"왜?"

"왜는 무슨 왜꼬?
우리고향 성주에서는 참외농사만 짓는기라,
그래서 학교다닐때도 참외 지겹고 억수로 먹어댔고
학교 끝나면 맨날 참외밭으로 불러대는 어머니 피해 숨어서 놀러다니느라 눈치 보고
아주 참외라면 지긋지긋 하다.
그런데 시집와보니 시댁도 참외농사 억수로 많이 짓고 우리 신랑은 참외장사 하고
참 내 신세도 불쌍하다 그치, 언니야.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런게 아니다카네.
내친구는 여기 영동으로 시집왔는데 걔는 이자 빨간색만 보면 자다가도 일어난다 카대"

"왜?"

"영동이 곶감의 고장 이잖아,
지금이야 감깎는 기계가 있지만 시집와서는 밤새도록 둘러앉아 온식구들이 잠도 안자고 감을 깎아대는데
내친구는 나보다 더 심해서 딸이 빨간색 원피스 사달라고 하는데 화가나서
아이를 펑펑 두들겨 주었다고 하잖아,
아이들이 빨간색 좋아하는건 당연한 일인데 말이야."

참, 둘다 똑 같네. 하고 웃고 말았지만 마음아픈 이야기다.

넋두리를 하고 앉아 있는 금련씨에게 늘 조용하던 금련씨의 남편이 다가와
"니는 여기 이야기하러 놀러 왔나, 장사할 생각은 안하고, 지금 여기 온지가 한시간 반이다.
아직 물건은 풀지도 못하고 쫓겨만 다니고 있으니 , 퍼뜩 오거라."하고 목소리를 높히자 금련씨는 입을 삐죽 내밀며,
"내 쉬는꼴은 조금도 못보지. 언니, 저 가요. 많이 팔아요. 조금있다 다시 올께요."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경찰이 호각을 불며 나타난다.
낡은 트럭에서 노란참외가 맛나게 빛나고 있건만 손님을 만나지 못해 팔려가지 못한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그렇게 미움을 받고 있는줄은 처음 알았네.

하기는 나 역시 화장품 장사를 하지만 새것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화장품을 사가지고 간 손님이 반품을 하는경우가 종종 있는데
식구들이 길에서 파는 물건을 어찌믿고 사용하려 하느냐 아이들이 야단 하는바람에 도로 가지고 왔다고 하는 화장품은 포장이 벗겨진 상태다.
다른것으로 바꾸는 경우가 아니고 환불해줘야 하는경우이기 때문에 이럴땐 기운이 다 빠진다.
물론 포장이 벗겨진 화장품은 내 차지가 되고 만다.

어떤날은 뒤돌아서는 손님 등에 대고 화가 나
"아줌마. 길에서 파는 물건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단지 가계 얻을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서 길에 나앉아 있는 똑같은 물건입니다"하고 말하지만 결국바꾸러 온사람이나 나나 마음무겁게 하는말이다.
오죽하면 노란 우산을 사달라고 하는 어린딸의 손을 잡고 돌아왔을가.
오죽하면 빨간원피스 사달라는 어린딸의 엉덩이 두들겨 패주고 돌아왔을까.
그래도 나는 미워할 색깔이 없으니 다행이다. 히히
시간반이 넘어서 금련씨가 떡볶이를 들고 뛰어온다.
"언니야, 우리 떡볶이 먹자."

"자리는 잡았어? "

"저 시장끝에 댔어, 하 쫓겨다니는것 지겨워서."

"잘했어, 어떻게든 빨리 팔아야지."

"그런데 언니, 나 지금 기운다 다 빠졌다."

"왜?"

"참외팔다 동창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니 여기와서 참외팔고 있나? 하이고, 지겹지도 않나, 하잖아."
그래서 내가 니는 뭐하는데? 했더니
저는 원룸 지어놓고 세받아먹고 살고 있다네.
아이, 기운빠져. 진짜 오늘 장사할 기분아니다."하며 들고있던 떡볶이를 도로 내려놓는다.

"장사는 기분에 맞춰 하는것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세 받아먹고 사는것 보다 땀흘리며 일해서 번돈으로 사는게 훨씬 보람있고 행복하겠다.
안그래?"하는 내말에

"그럴까?"

"그럼 힘은 들지만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 도와서 함께 버는게 진짜 돈 아닐까.
비록 힘은 들지만 말야."

"하긴 언니말도 맞긴해. 우리 신랑 혼자하면 힘들겠다. 가봐야겠다 어서가서 한사람이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며 돌아가는 금련씨의 뒷모습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런데 돌아가는 금련씨 뒤로 살짝 가서 "사실 금련씨, 가끔 나도 힘들긴 해, 그래도 우리 힘내자"하고 귀엣말을 하고 싶은걸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