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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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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이 엄마


BY 손풍금 2003-07-04

2년전 맨처음 장에 나간 날.
물건 놓을 비닐자리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과일을 앞에 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짧은커트머리의 아줌마옆 빈자리가 눈에 띄여 다가갔다.

그녀 앞에 다가서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해 조심스럽게
"아줌마, 저 여기 좀 앉아서 장사하고 가도 되요?" 할때
그녀는 깜짝 놀라는 몸짓으로 눈을 뜨고
"네? 하고 가요. 내땅도 아닌데 ... "하면서 도로 눈을 붙였다.
그리고는 금새 고개를 떨구며 가는코를 골기도 해 나는 돌아 서서 혼자 킥킥거리고 웃기까지 했다.

(정임이 엄마).

그날 그녀가 파는 흠집난 사과를 한봉지 사고
그중 한개를 꺼내 깎아 먹으며 그녀와 나는 동년배이고 과수원을 하며 세아이를 두고있는 정임이 엄마임을 알았다.
그녀의 손은 한번 보았음에도 웬만한 남자손보다 거칠고 커 다시한번 얼굴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 다음장에 갔을때도 또 그다음장에 갔을때도
나는 정임이 엄마옆에 다가 앉아 그녀와 친해지고 있었다.

종종 그녀가 들려주는 결혼생활에서 가족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적인 생활을 해온 우리어머니시절을 지내온것을 찾아내며 그녀를 가이없는 존경스러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들고는 했다.

"시집와 보니 쓰러져가는 방 한칸인 오두막집에
정신 놓으신 시할머니와 중풍으로 앓아누우신 시아버님,
오랜 병환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남게된 시아주버니가 한방에 계시는데 ... "

" 아..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하는 내말에

"뭐 어떻게 해요? 달리 방법이 없지요.
그분들 모시느라 허리한번 못펴고 이날까지 일했지요."

"아이고.....힘들었겠네요? .. "

"힘요? 글쎄요..사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부자라고 하루 밥세끼 더 먹겠어요?
밥먹는거야 다 똑같을거고..
옆에서 남편이 열심히 일을 하니 그것으로 견뎠지요."하더니
정임이엄마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있다.

그녀 옆에 앉아 함께 일을 하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내 어려움은 어려움도 아니다 싶었다.
중간중간 펴논 과일을 내게 봐달라 부탁하고는
시할머니 점심진지 차려드리고 온다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녀의 뒤로 먼시간이 옛날처럼 따라간다.

나는 어느날은 그녀의 오토바이끝을 까치발까지 띄면서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어쩜 안돌아올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는 이웃집 여자처럼 말이다.

정임이 아빠는 아침이면 과수원에서 따온 과일을 트럭에 싣고와 내려놓았고
정임이 엄마는 과수원 텃밭에서 따온 깻잎이며 옥수수, 자두, 강낭콩, 아니면 깨를 털어 짜온 참기름을 들고 나오느라 분주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농협과 오래된 이층건물의 철제문 사이에 끼어 앉아 그녀의 과수원에서 수확하는 과일을 판다고 했다.

손님이 주고간 돈을 받으면 무릎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똑바로 펴서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접어 주머니에 놓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은행엘 들어갔다.

나는 가끔 내가 팔고있는 화장품중 팔수없게 용기가 망가진것을 그녀에게 주며
"꼭 바르고 자요. 겨울되면 어떻게 하려고해요.
손 다터서 이젠 따갑고 아파서 견디지도 못할걸.. "했지만
다음장날 거칠어진것이 똑같음을 보아서는 바르지 않는것 같았다.

정임이 아빠가 과수원에 올라가는 새벽 네시면 함께 일어난다는 그녀는
장사를 하려면 눈먼소경도 사간다는 새벽장을 봐야한다며 누구보다 일찍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푼도 헛된돈을 쓰지않는 알뜰한 그녀에게
나는 가끔 허영스런 여자가 되어 장날이면
그녀에게 차한잔을 들고가 5일간의 안부를 주고 받는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날인가 ..
그녀의 과일파는 자리가 몇날이고 텅 비어져있었다.

작년 가을 .추석을 앞두고 그녀주위에서 날아온 비보,
아직 어른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해 더 일을 해야 한다며 변변히 휴일을 찾아내어 쉬어보지 못한 누구보다 성실했던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러니까 정임이 아빠가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그녀의 막막했을 심정을 숨막힌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살아있는자는 살아야 한다고,

세아이들과 힘차고 즐거운일을 상상하며 살아야지 어쩌려고 하는냐 하고,
걱정을 늘어놓던 나는
멍하니 과수원이 있는 서쪽하늘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멈추어 내자리로 돌아왔다.

정임이 엄마는 겨우내내 기운을 잃고
시들은 사과와 얼어버린 배를 말없이 팔았다.

그녀의 과일파는 자리가 나와 몇블럭 떨어진 곳으로 옮겨지면서 나는 그녀를 멀리서 훔쳐보면서 눈길이 마주치면 그녀의 애써짓는는 웃음을 받아내다 너무 무거워 다가가지 못하고 어찌해야하는지 생각이 안나 그대로 뒤돌아서고 말았다.

봄이 지나가면서
오래간만에 따뜻한차를 들고 다가가
그 두터운 외투좀 벗고 가벼운 옷을 입으면 마음이 좀 밝아지지 않을까라고 하며 그녀에게 아주 고운 핑크빛 연지를 선물했다.

지난장 그녀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면서 고개를 숙이며 멋적어했는데
장터사람들이 그녀에게 시선이 몰린것은 그녀의 고운 핑크빛 연지 바른 얼굴을 처음본것 때문만은 아니였던것 같다.

그녀의 환한 웃음과 가벼워진 옷차림에서 모두들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함께 바라보며 함께 기뻐했던것 같았다.

정임이 엄마네 토마토는 찰토마토다.
또 정임이 엄마가 짜온 참기름이 얼마나 고소한가 하면
그녀의 마음이 하도 알차서 그녀의 땅에서 자란 참깨는 더 터질래야 터질수 없게 영글었다고 하니 얼마나 애정을 갖고 농사를 짓고 있는지는 참기름을 먹어보면 알수 있다고 하는것은 순전히 내생각이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