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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놀아요.


BY 손풍금 2003-07-02

삼박사일로 야영간 아이들이 없는 좁은 방안엔 책이 뒹굴고 이불도 못갠채 누워있다.
참..나도 어지간하다.
이 좁은 방안에 엉겨놓은 게으름이라니.
조용한 동네에 전봇대에 묶여있던 스피커에서 흙에 살리라가 흘러나오고...
"알리것슈.... 오늘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있을 테니 하루 일손놓고 다들 나오셔서 막걸리한잔씩 드시러 오셔유.
개두 잡구 닭두 잡구 먹을거 푸짐하니께 다들 나오셔서 몸보신해유.."하는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밖에 차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은수 엄마다
"안 바쁘지??? 좋은데 가자....."하고 차가 선곳은 마을회관.

동네 어른들께서는 느티나무 아래 앉으셔서 음식을 들고 계시고 회관 앞마당엔 젊은사람이 몸을 아끼지 않고 어른들과 동네 사람 모두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드는데 한쪽에서는 보글보글 끓어오르고있는 큰솥아래 장작을 집어넣고있는데 그게 보신탕이라네.
그옆엔 백숙이 뿌옇고 구수하게 달여지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 세발자전거 타며 손엔 먹을거 하나씩 들고 좋아라 돌아다니고 이제 겨우 걸음마 떼는 은수는 손에든 수박 빨아먹으면서 뒤뚱거리고 은수옆에 붙어다니는 동식이는 닭다리 한개들고 얼마나 좋은지 정신이 없다.
동식이만 정신없는게 아니다.
어리버리 제대로 잘하는것 하나없는 나는 무슨일을 해야 하나 주저거리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설퍼 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수돗가에 앉아서 김치를 썰던 예진엄마 내손을 반갑게 붙들어주며 입안에 김치하나 넣어주고는
"불편하면 여기 앉아서 뒷설겆이나 해요."하며 챙겨준다.
세상에 고마워라..답해줄수있는거라고는 히히 하고 웃는거 뿐이다. 바보같은...멍청이. 해바라기..

아이들이 떨어트린 것 주워먹으며 쫄쫄거리고 돌아다니는 동네 강아지 서너마리는 얼마나 많이 먹어댔는지 배가 땅에 달듯말듯한 모양새로 내발치에서 어른거린다.
강아지들도 배부른거 보니까 동네 잔치는 잔치인가보네..난 이다음에 할거 없으면 꼭 개장사 하고 말껴..이렇게 개들이 나를 좋아하는걸 보니...

그런데 이거 너무한거 아니예요?
동네 사람들한테 젤 인기좋은 보신탕.
그 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신탕옆에 묶여있는 저 누렁이 두 마리........저거 너무 한거 아녀?

"아니 이장님!! 저거 산채로 집어넣을거요? 아무리 말못할 짐승이라도 동료의 사형장옆에서 놀게하면 안되지요." 하니
"괜찮아유....... 어차피 저놈들도 다음 복날 된장바를건데유....."한다.
뒤에 있던 경환이 엄마."언니.신경쓰지 마요. 그런거 아니래도 신경쓰며 살일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 신경쓰면 못살아요.
이 소주한잔 마시고 속이나 달래요...."건네준 소주 받아 마시는데 깻잎에 고기 한쌈 싸서 입안에 넣어주는 은수엄마.
인정이 많기도 해...
"맛있지??" 하는데 모두 나를 바라본다.
"응.... 맛있네.... 이거 무슨고기야?"하니 옆에 있던 아줌마들 한꺼번에 “개고기여..”한다.
“으허헉.. 개고기? 아이고 흉악해라..안돼..욱~~!. 하지만 이미 넘긴 개고기. 고추장에 오이에 고추에 팍팍 찍어 넘겨보았지만 속은 여전히 미식거리고 그 핑계로 속달랜다 하며 오래간만에 소주 몇잔 더 마시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전봇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따라부르며 뒷설겆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은수엄마가 챙겨준 닭다리 하나 꺼내들고 논둑길로 걸어오는데 언제 이렇게 그 좁은 논둑길에도 콩을 다 심어났는지...한치의 땅도 놀리지 않고 그저...어떻게든 거두기 위해... 애를 쓰는 그 수고라니 ..나는 논둑길 걷는걸 좋아한다.

잠시 슬리퍼를 벗고 논바닥에 고여있는 물에 발을 담그는데
에구야..개구리가 내 발등위로 펄쩍 뛰어오르다 저도놀라 도망가고 나도 놀라 소리지르고 집에 돌아오는 아무도 없는 논둑길 .
노래 부르며 걸었다.
기분 좋은참에 일찍 자야지.
발로 슬쩍 책 한옆으로 밀어놓고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불자동차 소리를 내며 모기가 귓전을 맴돌고 있다.
벌떡 일어나 스위치를 올렸지만 이놈의 모기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다시 불끄고 누우니 또 소방차 소리 내며 달려드는 모기..
불켜고 모기 찾아보고 또다시 불끄고 이러기를 수차례.
거의 모기약을 들어붙듯 뿌려보아도 꼭 한 마리는 살아 남아 돌아다니는 모기가 있으니 무슨 조화속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석구석 걸린 옷사이도 뒤집어 보고 엎드려 서랍장 밑으로 모기약을 뿌리는데 떠오른 기발한 생각.
일단 불을 끄고 모기가 윙윙거리는 귓가를 중심으로 사정없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손벽치기 수십차례.
어느 한순간 손바닥위로 따뜻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온몸으로 퍼지는 야릇한 쾌감이 나를 전율케 했다.
불을 켜고 보니 모기는 형체를 잃고 내 손바닥안에서 즉사를 했다.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 보니 얼마나 많은피를 빨아먹었는지 선혈이 낭자한 손바닥을 펴 유자처럼 노오란 달빛에 비쳐보았다.


“나는 혼자서도 잘놀아요..흐흐흐”


2000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