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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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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만든 풀꽃반지


BY 김별하 2003-06-25

나른한 오후, 하늘이가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 듯 내게 말한다.

"엄마, 우리 놀이터라도 가요, 나 심심해 죽겠어요. 언니는 친구랑 놀러 나갔고, 엄마는 앉아서 글만 쓰고, 아빠는 출장가시고 나는 뭐야ㅣ 정말 따분해.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타고 놀이도 해요, 네?"

그녀의 푸념이 너무 애절했다. 마치 어른들 신세 한탄하듯 그렇게 작은 요정은 내게 신세한탄을 늘어 놓으며 함께 해주기를 애원한다.

"하늘아, 엄마 이거 조금만 쓰면 마무리되는데......"

"안돼 안돼. 나도 지금이 너무 중요해..." 하더니 슬그머니 ''요'' 자를 붙인다.

우리 가족은 존대말을 쓰지 않으면 이마에 땅콩알밤을 먹이기로 약속이 되어있고, 나쁜 말이나 별로 안예쁜 언어를 사용해도 이마에 땅콩알밤을 먹이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아빠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그 공포의 땅콩알밤을 여러번 먹어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는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예쁜말 쓰기 차원 이기 보다는 공포의 땅콩알밤을 두려워 하는 이유로 언어순화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하늘이 오늘 땅콩알밤 여러개 먹겠는걸?"

"알았어요, 먹을께요, 먹을께요, 그러니까 놀이터에 가자구요 뭐."

하늘이는 아픔을 불사하고 내게 자신의 지금 기분을 사정없이 얘기했다. 따다다다다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나는 그녀의 이마에 공포의 땅콩알밤을 한번만  먹여주고는 씨익 웃으며

"그래 나가자. 대신 엄마는 벤치에 앉아 책읽을 거야. 알지?"

"그럼요. 엄마가 같이 있기만 하면 돼요. 빨리 가자...........요. ㅋㅋㅋ"

그녀와 나는 기미, 죽은깨가 생길까봐 모자를 꾹 눌러쓰고 옆구리에 읽을책을 쿡 찔러 넣고는 놀이터로 향했다. 5월 꼬랑지의 햇볕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구름 한점 없었다.

하늘이는 그네도 혼자 너무나 잘타고,미끄럼도 쏜살같이 내려오며, 타잔처럼 링을 교대로 잡고 끝까지 가는 놀이도 신기하리 만치 날렵하게 잘했다.

와~ 정말 많이 컸구나  작년까지만 해도 무섭다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탈수 없었던 그녀가, 그렇게 야리 야리 했던,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그의 별명 ''조폭마누라''를 실감나게 한다.

얼굴은 코스모스처럼 가늘가늘해 가지고 행동은 너무 터프해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커다랗게 박수를 쳐주었다.

내 박수소리를 들은 그녀가 화알짝 웃으며 사랑의 하트를 온몸으로 그린다. 나도 온몸으로 하트를 그려 그녀에게 후~ 날려보냈다.

내가 잠시 책을 읽는 사이 하늘이는 호들갑을 떨며 똥그란 이마를 바람처럼 밀고 내게로 달려온다.

"엄마? 이 꽃향기 너무 좋죠? 이름이 뭐예요? 한다.

"음~ 이건 토끼풀 꽃이야, 이거 엄마가 어렸을 때 반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고 또 팔찌도 만들었다? 하늘이도 해줄까?"

"엄마, 나두 해주세요, 하늘이가 많이 가져올께요."

그녀는 또 바람처럼 달려가 토끼풀 밭에 앉아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며 토끼풀꽃 중 가장 비슷한 크기의 꽃들을 여러 개 가져왔다. 내 두손가락을 마주 모아 네모를 만들어 그녀를 향해 액자도 만들어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하트도 만들어 그 속에 그녀를 담아 보았다. 오래도록 그 모습 간직하고 싶어서.

"엄마, 우선 반지 만들어 주세요. 내꺼 하나, 엄마꺼 하나."

나는 동심을 찾고 있었다. 어느새 어린 내가 되어 하늘이란 친구에게 예쁜 풀꽃반지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읽던 책을 덮고, 나는 동심의 세계로 스며 들었다.

"우와~ 너무 예쁘다. 우리 커플링 이다. 그쵸?"

일곱살 두 소녀는 손가락을 나란히 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팔찌도 만들어 주세요. 목걸이두  요."

주문이 많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커플링이 시들지 않았으면 하고,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그래서 꿈같은 우리의 이 시간이 사라지지 말기를 조심스레 기도했다.

"하늘아, 옆에 계신 할머니께 이 꽃 한송이 선물해 드려. 할머니도 어릴때 이 꽃으로 반지 만들어 끼셨을 거야. 이 꽃 받으면 무지 좋아 하실껄?"

나는 하늘이의 동심을, 곁에 쭈그리고 앉아계신 할머니께도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이 꽃 선물 이예요. 받으세요. 향기가 무척 좋아요, 한번 맡아보세요."

"아이구 고마워요. 이쁜 애기. 정말 향기가 좋구먼."

할머니는 흐린 눈으로 한참을 꽃 속에 머무셨다. 잠시 동심을 추억 하셨을까?

지팡이를 의지하시는 할머니의 수줌은 미소 속에서 훗날의 내 모습을 발견하다.

한참을 놀던 하늘이는 이제 마음이 흡족한 듯 하얀 토끼풀꽃다발을 들고는

"엄마, 이제 집에 가요. 집에 가서 엄마 하던 일 다시 해도 돼요."한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빠져 나왔다. 동심의 세계에서도 빠져 나왔다.

"하늘아 고마워. 날 그 아름다운 세계로 데려다 줘서. 그리고 사랑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