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밭두덩에 골고루 퍼지고
고추 모종에 물을 주었습니다
빨갛게 열릴 고추들이
지금 파릇하게 물들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시집 안간 그 딸도
다닥다닥 호미로 둔덕을 세웠습니다
이심전심 긴 침묵의 그림자 드리우고
봄볕 따스한 하루가 갑니다
집문턱에 강아지 한마리
세차게 달려와 반기고
피곤을 눕힌 마루에 그리움 하나
천정에 매달려 있습니다
무심한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사라지고
형체조차 잡을 수 없는 너
울릴 수 있는 전화라면
티비로 비친 도회지 다시 꺼내지 않을 겁니다
동그란 밥상에 나 앉은
하나 둘 셋 묵언 묵상
숟가락 소리
그리움도 물컹 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