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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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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사랑 33장


BY 어지니 2003-10-28

설희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 곳은 화사한 네온사인이 먼저 시선을 끄는 [천년동안]이라는 클래식 라이브 바였다.

레이저로 새겨진 크리스탈의 문양을 비추면서 갖가지 오묘한 색채를 내는 네온사인은 길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내고 있었다.

[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우리가 이렇게 아파하지도 않아도 되는 것일까...천년이 지나고, 만년이 지나면...온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널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승규와의 결혼이 목을 조이면서 다가오던 어느 날....재색에 가까운 회한의 음성으로 그가 말했었지...

[천년동안]이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떨어내려 했던 기혁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설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치솟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눈언저리를 매만지는 나경의 모습을 짐짓 못 본체 하고는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푹푹 빠져드는 카페트 때문에 걸음걸이가 갸우뚱 위태로운 나경에 반해 설희는 발끝의 푹신한 감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뿐사뿐 잘도 걸어가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한동안 뜸하셨습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보아 한두번 들리는 곳은 아닌 듯 했다.
평소같지 않게 낮게 가라앉은 설희의 표정을 살피면서 지배인은 룸으로 안내해주었다.

설희의 전화를 받고서 후레지아로 가득채웠다는 룸에 들어서는 순간, 나경의 손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고 있었다.
널부러져 있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만큼 테이블과 쇼파를 빼고는 온통 후레지아 천지였다.
은은하게 향을 자아내던 후레지아도 그렇게 다발로 모여져 있으니 그 향이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원색적이면서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설희의 스타일이 그대로 증명해주는 룸이었다.

한마디 말이 필요없이 지배인은 그녀의 스타일대로 위스키와 안주를 놓아주었다.
카토스 25년산은 쪽빛 요술램프에 담겨져 마개를 열자 부드럽고 특이한 스카치 위스키의 향을 뿜어내었다.

후레지아 향에, 진한 위스키향에 나경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벌써 취해버릴 것 같았다.

잡으면 금방이라도 뚝 소리를 내며 부러질 것 같이 여린 크리스탈 잔이 놓아졌고, 예술적으로 깍여진 과일과 찹스테이크가 놓여지고 있었다.

작은 크리스탈잔에 위스키를 담아 나경 앞으로 밀어주고는 마시잔 말도 없이 먼저 잔을 비운 설희는 또 다시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남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놓구선 설희는 독한 위스키를 안주 한점 집어먹지 않고 들이키고 있었다.

"왜 안 마셔요? 나랑은 술도 마시고 싶지 않은 거에요?"

시비조로 깐죽거리기를 계속하는 설희의 독촉에 크리스탈 잔을 살며시 잡아들었다.

우웩!

나경은 40도의 독한 기를 참지못하고, 토악질을 하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술이야?

뜨거운 음식을 집어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얼굴마저도 화끈 달아올랐다.

깔깔깔~~
나경의 그 모양새가 너무나 웃겨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경은 입안의 독기를 씻어내기 위해 물을 들이켰지만, 이미 안으로 넘어간 독기는 그녀의 뱃속을 뒤집어놓았다.

딸꾹...딸꾹.
간신히 토악질이 그치는 가 했더니, 이번엔 난데없이 딸꾹질이 시작되어 나경은 거푸 물을 마셔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토악질에 딸꾹질을 해대던 나경을 향해 깔깔 웃던 설희의 표정이 슬프디 슬픈 표정으로 바뀐 것은...

"기혁씬 커피를 잘 마시지 않죠....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시지도 않는 커피에 대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어요....그리곤,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사기 시작하더군요."

커피라면 무슨 종류고 상관없이 좋다는 말을 그에게 했었지.....
기혁씨의 어떤 면이라도 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었는데....차마 하지 못하고....커피를 대신해 그렇게 말했었어... 그런데, 이제와 왜 그런 말을?

카멜레온처럼 이리저리 표정을 바꾸던 설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천천히 좀 마셔요....무슨 술을 그렇게....안주라도 먹어가면서 마셔요."

설흐는 자신을 걱정하면서 과일이 담긴 크리스탈 접시를 드밀어주는 나경을 쳐다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참...나경씨란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이 와중에 내 걱정을 하다니...난 도무지 그렇게 안될 것 같은데..."

"기혁씨가...왜 당신같은 사람을 좋아할까 생각했어요....이제는 알 것 같네요."

설희는 바로 옆에 두었던 백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척 보아도 청접장이 틀림없었다.
참고 참았던 울분의 감정이 폭발해버릴 것 같아 나경은 토악질을 일으키던 카토스에 입을 갖다대었다.

"꼭 이래야 해요? 이러지 않아도....될 것 같은데...."

"보고 싶지 않을테지만...그걸 봐야 그 다음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구석까지 밀어내는 것도 모잘라 낭떠러지로 떠밀어내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그걸 원한다면 해주지...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청접장으로 보이는 봉투를 집어든 손끝은 사시나무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더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은 이빨이 다 빠질 것 같이 이를 앙무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경씨도 기혁씰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거군요....이젠 체념할 만도 한데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그만해요, 그 초월한 듯한 표정....너무 역겨워!"

설희는 신경질적으로 크리스탈을 집어들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이 충격적인 역겹다는 말에 떠밀려 나경은 봉투안의 내용물을 꺼내었다.
그러나,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끝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지만....그것을 확인하는 작업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걸 봐야...다음 얘길 할 수 있어요...."

설희의 재촉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는 선홍빛으로 꾸며진 청접장의 내용을 보고선 그게 또 믿기지 않아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이게...."

말을 버벅거리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나경의 얼굴을 쳐다보던 설희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또 다시 깔깔웃기 시작했다.

"어쩜 그렇게 두 사람 닮았나 몰라....기혁씨도 난처해지니까 말을 더듬더니만...."

"설희씨!"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게 궁금해요? 궁금하시겠지.....궁금할거야....."

사람의 오장육부를 말라 죽일 작정을 한 사람처럼 설희는 깐죽거리며 청첩장 안의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을 뜸들였다.

"박 영훈이라는 사람....기혁씨 친구 말이에요...나, 그 사람한테 맞을  뻔 했어요...경찰서에 먼저 와 있는 나를 쳐다보는 그 사람 시선이....마치 무슨 불륜이라도 저지르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는....더러운 시선이었어요.....니가 왜 여기 있냐....첫 마디가 그거였어요. 당신 왜 여기 있어요도 아니고...니가 왜 여기 있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통성명도 나누지 않은 내게도 야라며 버럭 소리부터 질렀던 사람이니....오죽했을려구.

  "집에선 선을 보라고 난리부르슨데...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꿈쩍도 않고....그래서 확답을 들을려고 왔었어요. 날 좀 봐달라구....가슴 한켠이라도 좋으니....날 위해서 비워달라구....애원 했어요. 그랬더니....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울어버리드라구요. 남자가 소리없이 우는 거 봤어요? 난 처음 봤어요...놀랍고, 놀라워서...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도 잊어버렸어요.....그러더니....나가버리데요...버려진 느낌 그거 알아요? 아주 더럽고, 기막혀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그래. 그것만큼 가슴을 에이게 하는 것도 없지.

 "새벽녘에 전화가 왔어요...사실은 나경씨한테 하려고 했던 전화였는데....술에 쩔어서 번호를 잘못 눌렸던 거죠....음주운전 단속에 걸려서 경찰서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봤어야 했어요....."

청첩장을 본 나경의 처음 마음은 주정처럼 주절거리는 설희의 말을 칼로 자르듯이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어느사이엔가 그녀와 같은 마음이 되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난 나경씨보다 이쁜데....나경씨보다 가슴도 크고....벗어놓으면 나도 반할 정도라구...."

윽! 아픈데를 찌르다니....

"근데, 왜 기혁씬 나경씨만 사랑하는거지? 아무리 보다 나보다 못한데....킥킥킥....그 인상 좀 피면 안돼요? 너무 웃겨..."

웃긴다고 말을 하고, 입술로는 웃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앙하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경씬....이래서 나경씰 좋아하나봐."

40도의 위스키를 막무가내로 마신 탓인지...설희의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잔을 집어들려는 그녀의 손을 가로막았다.

"김 나경씨!"

"마실 때 마시더라도....안주 좀 먹어가면서 마셔요...."

"바보, 멍청이....알아요? 당신이 그렇다는 거?"

그래, 알고 있다...내가 바보라는 거...멍청이라는 거....알면서도...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어...

설희는 포크에 메론을 집어 들고 있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 나경 손에 쥐어져 있는 포크를 건네받았다.
하마터면 고맙다는 말을 할 뻔했다.

내가 술이 취하긴 취한 모양이네...고맙다는 말을 하려 하다니. 이 여자한테....원수같은 이 여자한테....

"더 취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면 곤란하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잘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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