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하게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내 꽃밭 이야기다.
꽃밭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집은 대지 300평 건평 50평 쯤 될 것이다.
십오년 전 이사하고, 내게 주어진 화폭이었다.
앞뜰에 장미 한 그루 뒷뜰에 돌배나무 하나가 있었다.
아...또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나무도 3 그루 있었다.
지붕에 그늘을 만들어 냉방비를 절감해 줄 나무 한 그루를 빼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다른 사람이 낙서한 것은 지워야 했다.
아름드리 두 그루와 돌배나무를 잘라내기로 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니 고개를 젓는다.
톱을 들고 나섰다.
돌배나무야 크지 않으니 쉽다.
아름드리 두 그루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잘라보기로 한다.
어느 방향으로 쓰러뜨릴 것인지를 먼저 정하고 톱질을 시작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나뭇꾼 보조 역할을 했으니 그 정도 지식은 있다.
쓰러뜨릴 방향 먼저 톱질로 틈을 만들고 반대쪽에서 톱질을 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간다.
아무리 강하다해도 여자니까 힘에 부친다.
지치면 멈추었다 다시하고 또 멈추었다 다시하고 사흘을 매달려 드디어 넘어뜨렸다.
드디어 해냈다.
남편이 나와서 보더니 혀를 내두른다.
'너 까불지마, 안도와준다고 내가 맘 먹은 것 안하고 못하는 것 봤냐?'
속으로 이 말을 하고 의기양양한 웃음을 남편에게 날렸다.
못말릴 줄 안 남편이 전기톱을 빌려와 나무를 토막내 주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둘, 돌배나무가 하나, 토막을 내어 쌓으니 작은 동산이 생겼다.
이것들은 또 어찌 처치하나...
뒷뜰 잔디밭을 삽으로 파고 굴러다니는 벽돌을 이용해 아궁이 모양을 만들었다.
마침 겨울이어서 아무리 텍사스라해도 아침 기온은 쌀쌀하다.
날마다 어둑한 새벽 뒷뜰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등에는 겨울 새벽의 싸늘함, 앞은 활활타는 불길의 따끈함, 혼자 누리기 아깝다.
거의 매일을 아궁이 앞에 앉아 나뭇가지를 태우면서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새벽마다 아궁이에 군불을 피워 내 방을 덥혀주셨던 아버지 생각도 났다.
산더미처럼 쌓인 나뭇가지를 태우면서 그 해 겨울은 그렇게 내내 따뜻했고 행복했다.
나무를 잘라내고 느낀 뿌듯함, 새벽 냉기를 불길 앞에 녹이는 기쁨,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의 추억, 살아있음이 좋았다.
삼백평 대지에 만들어 간 꽃밭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