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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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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그리고 공간


BY 오늘풍경 2019-11-21

내가 커피를 파는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커피 때문이 아니라 공간 때문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로 꾸며진 카페에 앉아서 바깥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떠올리는 이미지 역시 낯선 도시의 카페에 앉아 유리창 넘어 오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세련되고 안락한 의자들과 편안한 동선을 고려한 가구들의 배치, 그리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속에 앉아 마음을 쉬고 있으면 시련이 뭐예요? 인생의 아픔이 뭐예요? 난 그런 거 몰라요, 전 공주로 자랐거든요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오늘 낯선 동네의 목욕탕을 찾아 갔다가 대만족을 하고 돌아왔다.
대중목욕탕이라는 공간도 사람에 따라서 유난히 더 편하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는 것인지 엄지척 해 주고 싶은 곳이었다.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홀이 우선 넓었고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홀 내 매점과 세신을 같이 운영하는 두 분의 여성분들도 너무 곱고 정갈한 인상이었고 친절하다. 탕내의  온탕과 열탕 그리고 냉탕까지 편하게 움직이며 씻고 쉴 수 있도록 잘 배치되어 있고 탕의 크기도 적당했다.  샤워기가 매달린 좌식 공간도 넓고 서서 샤워하는 곳도 몇 초 후에 물이 멈추는 방식이 아니라 돌려서 사용하는 식이라 좋았는데 물줄기 역시 아주 속시원하게 콸콸 나왔다. 두 종류의 사우나 온도 역시 내 몸과 딱 맞아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니 치료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피로가 풀리고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뼈 마디 마디가 시원해지는 맛이라고할까. 보일러의 위치 사우나실의 크기,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지게 만들어진 바닥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문을 조금 열어 놓을 수 있도록 나무토막까지 준비해 놓은 세심함에 만점을 주고 말았다. 다 씻고 나와서 사먹은 계란은 내 계란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사우나실에서 8시간 구운거라는데 정말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은 계란이 되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지금은 잘 가지 않지만 한 동안 부지런히 다녔던 카페에 들러 카라멜라떼를 시켜 역시 뭐 볼거리도 없는 한적한 동네 풍경일 뿐이지만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카페 인테리어의 마법에 걸려 한참 앉아 있다가 왔다. 노오란 은행나무는 늘 그렇듯, 우리 보고 힘내라고 하는 것만 같다.

한 집에서 16년이나 살 수 있었던 것은 집이 가진 공간의 미학 혹은 공간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거실폭도 좁고 누수로 고생시켰고 오래되어 지저분하긴 해도 이사 가기 위해 많은 집을 둘러보고 돌아올 때마다 아, 이만한 집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도가 컸다. 남향에다가 서쪽 말고는 모두 창이 나 있고, 베란다의 쓰임새도 좋고 방이 세 개라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마루바닥이라는 점. 지금은 대부분 마루를 깔지만 16년전만 해도 신축인데다가 마루까지 깔려 있어서 그 전까지 장판까는 집에만 살다가 신세계였다.  이 공간에서 싸우고 울고 웃고 먹고 자고 놀고 일하며 인생의 삼분의 일을 보냈으니 각별하달 수 밖에.

병원 입원실도 보면 2인실보다 위치에 따라선 5인실, 6인실의 창가 자리나 문 앞 넓은 공간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이미 퇴원을 했지만, 최근 다친 친정오빠가 2인실에 있다가 5인실 마음에 드는 위치로 옮겼을 때 환하게 웃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실비처리로 병원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굳이 다인실로 옮기고 싶어했던 오빠의 선택이 되려 약이 되었다.

나중에 요양원에 가게 되면 정말 마음에 드는 공긴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공간이 주는 만족이 있으면 더 잘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사하게 될 곳의 첫 방문에서 아,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구나 싶다면 여생이 더 행복하리라. 좋은 사람, 좋은 음식, 좋은 책, 좋은 영화 다 좋은데, 마음에 드는 공간에 있고 싶은 이 욕망, 왠지 내려놓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