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머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내가 오늘을 남편의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을 해야 되므로
모처럼 머리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
머리에 투자한다고 미용실을 찾는 건 아니고 화장대 서랍장에서 잠자고 있는 헤어롤로 살짝 머리에
멋을 내는 것이다.
미용실에 다녀오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이 좋아서 가끔 이용하는 방법이다.
난 미용실에 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자연스러운 머리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헤어롤을 하고 화장을 하니 어제 저녁에 팩을 한 덕분인지 화장이 잘 되었다.괜시리 한 버 미소를 지어보곤..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헤어롤을 하나씩 철수(?)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머리 중앙에 있는 헤어롤이 빠지질 않는다.
다른 롤은 그냥 살짝 잡아당기니 부드럽게 빠졌는데 요것은 앞으로 당겨도, 그냥 당겨도
내 머리만 따끔거리고 엉겨서 영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급기야 마음이 급해지면서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엄마의 모습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나의 논리정연한 헤어롤의 원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머리를 소중히 다루며 헤어롤을 빼려고 안간힘을 동원하는데 이 작은 헤어롤이 말처럼 쉽게
빠져 나오질 않아 아들과 내가 머리와 씨름을 했다.
남편의 헤어드라이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조급해져서 장소를 거실로 옮겨 거울을 봐 가면서 헤어롤을
달래면서 정리를 하려고 해도 좀처럼 말을 안 듣는다.
아들이 바리톤의 목소리로검색을 해보라고 한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검색을 했지만 뽀족한 답은 나오지 않고 한올씩 조심스레 빼라는데...ㅠ
결국 내가 머리밑을 잘 잡고 아들은 인내심을 총동원해서 한올씩 머리카락을 헤어롤에서 뽑아냈다
다행히 탈선한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머리와의 전쟁에 조금 허무해서 그 헤어롤을 그즉시
휴지통에 냉큼 버렸다.
그러곤 아들에게 한마디 건넸다.
"아들아, 이런 건 경험이고 너도 알아두면 좋아,
혹시 나중에라도 여친에게 이런일이, 와이프에게 이런일이 일어날 경우에 잘 할 수 있을거야..ㅋ"
며칠 전에 여동생이 찍찍이를 잘못 사용하면 머리가 상한다는 말을 나는 잘못알아 듣고
"무슨 찍찍이?" 하며 되묻다가 찍찍이=헤어롤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은 좋은 헤어롤이 나왔다고 그걸 사용해야 머리에도 손상이 없다고 귀뜸을 했었는데
난 이번 사건을 통해 갖고 있는 헤어롤을 몽땅 버려야 하나? 하다가
일단 두고 보자 하는 생각에 다시 화장대 서랍에 넣었 두었지만...
남편에게 그 예식장에 내가 꼭 가야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니 며칠 전 과는 다르게,
와이프들은 올 만한 사람이 없다고 내키지 않으면 혼자가도 될 거 같다는 반가운 소리에
난 프리우먼이 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안 가도 된다고 하면 아침부터 이런 생쇼를 펼치지 않았을텐데
예전보다 모임이나 경조사에 함께 가길 바란다.
단정한 머리와 예쁘게 화장한 얼굴로 집에만 있기에는 아깝고 어디를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