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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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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언니


BY 마가렛 2019-10-09

조심스레 전화 선을 타고 들려오는 사촌언니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특이한 억양의 톤이 여전했다.
어렸을 때는 곧잘 왕래도 하고 내가 잘 따른 사촌언니였는데 결혼이란 둘레에 싸여 서로가 거리가
멀어지고 연락도 뜸해지더니 집안행사 때나 한번씩 얼굴을 볼 정도였다.
마지막이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잠깐 인사 나눈게 다였다. 솔직히 난 그때 다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챙겨주느라 사촌언니가 왔는지 조차 기억에 가물하다.
언니는 딸을 결혼 시킨다며 올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가야한다고는 말을 못했다. 요즘들어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대답을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사람일은 모를 일이고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고, 그런일이 요즘 종종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언니딸의 결혼식은 서울 시내 모호텔에서 해가 떨어지는 듯한 시간에 진행이 되었다.
우리 세자매의 등장으로 언니는 얼굴이 더욱 생기가 넘쳤고, 뜻밖이라는 듯 엄청 반가워했다.
친정 남동생도 참석한 결혼식장에는 오래간만에 보는 사촌, 육촌형제들에게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나는 평소보다 더 환하고 더 밝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어쩜 우리집에선 내가 큰언니이고, 큰누나이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도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선남선녀의 등장은 많은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축복을 받는 최고의 하이라이트.
나중에 큰집 사촌 큰형부에게 다가가 오래간만에 인사를 드리니 아주 반갑게 나의 손을 잡으며
예뻤던 얼굴이 이젠 나이가 들은 티가 난다며 말씀하시며 굵은 주름의 얼굴로 환하게 웃으셨다.
예전의 멋진 형부얼굴이 늠름한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이 든 형부는 아마 40년 전의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머물렀으리라.
예전엔 사촌이라도 친형제처럼 자주 얼굴보고 자주 밥먹는 사이였으니 정이 각별했다.
친정아버지가 막내고, 위로 형이 두 분 계셨으니 나에겐 큰집이 두 곳이 있어 
시골에 살 때는 방학 때 의례 놀러가는 곳이고,
서울로  이사와서 살 때도 나는 큰집을 내집 드나들 듯 자주 찾아갔다.
사촌들과 어울려 공놀이, 소꿉놀이, 수수께끼 맞추기, 달리기등 그야말로 동네친구들과 노는것 처럼
그렇게 놀고 지냈다. 큰엄마는 당연히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셨고, 밤이 늦으면 자연스레 큰집에서 잠을 자고,
그맇게 놀다가 어둑하면 언니가 정거장까지 데려다 줘서 버스를 태워 보냈고,
사촌형제들이 많다보니 모두 나이 차이가 위로 아내로 한두살 차이씩이라
도레미파솔라시도 음표였다.
사촌언니는 늘 엄마를 친엄마처럼 의지했단다.
큰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의 정도 그리웠지만 우리엄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시고,
정이 많으셔서 많이 베푸시는 분이라 언니의 그런말이 어쩜 당연한 것일 수 도 있다.
큰집형제들은 불행하게도, 큰오빠도, 막내 오빠도 세상을 일찍 하직해서 언니는 이젠 오빠 한 분과
언니 한 분이 계시는데 그 언니도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니 외롭단다.
큰 행사에 결혼식장에 친정친지들이 많이 참석해줘서 얼마나 다행이고 뿌듯하고
형부에게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니 결혼을 해도 친정이 그립고, 따듯하고,
생각나는 변하지 않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언니가 내게 말한다.
주중에 꼭 한번 친정엄마를 뵈러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언제 시간이 괜찮냐며 물어오는 언니에게 엄마도 언니를 보면
무척 반가워 할 거라며 가까운 시일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결혼식을 통해 가족의 정도 다시한번 느끼고 생각지도 못한 얼굴들도 다시 보게 되어
이번 결혼식은 그어느 결혼식보다 나에게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결혼식이었다.



 
사촌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