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때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000 톡 봤니? 할아버지 되었어!"
나는
" 우리도 할머니 됐는데 뭘!"
했더니
"외모가! 한 번 봐"
하길래 그 친구의 톡으로 들어가 보았다
프로필 사진엔 아들인지 늠름한 청년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얼마 전 JTBC에서 방송했던 스페인하숙 촬영지도 갔는지 거기서 찍은 사진도 있다
사진 속 그 친구는 정말 머리가 하얗고 얼굴에 주름도 있는 게 사진상으로는우리들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성당 단체활동을 열심히 하였는데 남녀 고등학생들이
대학생 지도자와 함께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그야말로 순수한 소년소녀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으로 만나며
건전하게 신앙생활도 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니까 성당에 가서 미사도 하지만 어쩌면 풋풋한
만남을 할 수 있는 모임이 한 몫 했다는 생각도 든다
지도자와 함께 한 가지 주제로 토론도 하고 때론 문학회나 연극, 탁구 등의 운동을 함께 하며
학교는 다 달랐지만 같은 성당이라는 공감대 탓에 참 재미있는 추억도 많았다
친구들과 등산도 가고 딸기밭도 간 흑백사진들을 지금도 갖고 있다
특히 우리 기수는 선배나 후배들 보다도 유난히 끈끈한 정이 쌓인 탓에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정 기간 우리의 만남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 친구도 친하게 지내는 남자3인방이 있었는데 그 세 명 중에서도 키가 제일 작고 왜소해서
나는 특별한 감정을 느껴 본 적도 없고 그냥 편한 친구로만 지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서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와 만남을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가 나한테 첫 date 신청을 한 거 였다
나는 졸업 후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에 나간 거였는데....
그렇게 그 친구와는 가끔씩 만났지만 내게는 친구 그 이상의 설렘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만만하고 편한 동생(나보다 한 살 연하) 같은 느낌이라 그 친구가 군대를
가는 날 와 달라고 했건만 나는
"내가 니 여자 친구도 아닌데 왜 나가냐? 너 군대 갔다오면 너네 엄마가 너한테 잘 맞는
여자친구 소개할걸!"하며그 친구의 나를 향한 마음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군대 가 있는 그 친구에게 편지도 보내고 책도 보내면서도 그 친구한테는
친구로 보내는 거라고 선을 그었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남자보다 덩치가 더 커 보이는 게 만나면서도 자꾸 마음에 걸렸고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어린 게 까분다고만 생각을 한 것이다 철딱서니 없게....
그렇게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그 친구도 내 결혼 소식을 듣고 바로 결혼을 했다는 얘기는 나중에야 알았다
살면서 나는 여러 풍파를 겪었고 그 친구는 좋은 여자 잘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풍문으로만 들었다
그랬던 친구의 요즘 모습을 톡으로 확인하고 보니 잘 살고 있는 듯 보여 괜히 마음이 묘해졌다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나니
문득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오르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 시에서 다음의 대목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