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이란 결혼하고나서는 그저 도움만 받는곳이고 쉬는곳이었는데
참 왜그랬을까 무조건 시가쪽 먼저 생각하고 친정은 쉬는곳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럼 안된다고 하면서도
똑같이 일을해도 가사일 육아는 여자일이었던 내세대는 참 친정도움없음
일을할수 없기는 했다
그래서 대부분 많이들 일을 그런문제로 그만두었지만 내가 아직까지 꿋꿋이
일을 할수있었던것은 아이들 어릴적 정말 누군가 육아도움이 필요할때
친정의 도움이었으니까
사실 나보다도 울남편이 고마워해야지
그리해서 시가쪽만 챙기고 살았는데
시어머님 병원비니 시아버님이 빚이니 그나마 내가 일을 하니 감당할수 있었던것이니까
다지난일이지만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난 육아에 치중하기 위해서 일을 그만두었을것 같다
육아 같이 해주지 않고 육아도움을 시집에서 받는 조건으로 일을 했을것 같다
이제 친정도 도움을 받는것보다는 도움을 주어야하게 된지
울아버지 아프시고 나서 부터이니 10년이 되었다
병원2년 입원하는동안 밥이나 반찬해서 가져다 주고
그이후는 그나마 같은 동네 살아서 아프시면 바로 올라가서 보고
생일 미역국도 아침에 해서 줄수있고
지나가다 불쑥 들려도 그냥 있는 반찬을 밥도 차려주고해서 좋았는데
어쩔수없이 이사하고 나서는 같은 서울이라고 해도 버스정류장까지는 십분거리
버스도 갈아타고 가야하는 거리가 되기는 하였다
뭐급함 택시도 타기는 하지만
차가있음 한 이십분안에 바로 갈거리인데
내가 차가 없으니 역시 불편하기는 하지만
운전까지 배우고 싶지는 않다
이나이 기계 배우느라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다
다른것으로도 스트레스받는것이 많은데
여동생은 너무나 겁이 많아서 못배운다고 하고
앞으로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운전을 배우기는 해야하는데
그나저나 이제는 그 보살핌의 강도가 더 높아질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엄마가 팔을 잘 못쓰시고 해서 힘들다고해서 꽃게탕과 갈비찜을 해서 가져갔다
하필 남편도 산에가서 없는날이라 그무거운것을 들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버스 갈아타고 도착하니 에고 무거운것 겨우 들고가기는 하였다
하필 택시도 안잡히고해서
국물 무게에 찜이니 무게 안달아도 거의 십킬로 다 될듯한데
엄마는 힘든데 뭐할려고 해오냐고 하지만
나중 더 힘들면 해오라고 하지만 지금도 힘이든 상황이다
병원에서는 움직이지 말아야하는데 아버지가 있으시니 안움직일수가 없고
정말 엄마라도 어디 좀 쉬게 하면 좋은데 아버지 두고 어디 가지 않으실것이고 말로는 간다 간다 하지만
에휴
친정만 다녀옴 마음이 무겁지만
그나저나 엄마가 더 아프지 말아야하는데 너무 몸을 혹사시키니 팔십넘어서도 환자인 아버지 뒤치닥거리에
에휴
그래도 울아버지는 맨날 큰소리만 치신다 ㅎㅎ
젊었을적에도 쌀이 떨어져도 걱정이 없던 아버지신데 뭐 지금이야
오늘도 그냥 같이 웃었다
ㅎㅎ
곧 제사가 다가오고
제사 지내고 나면 여행가고 싶어하시는 시어머님 모시고 여행도 좀 다녀와야하는데
올린꽃은 아네모네꽃, 오스테오펄멈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