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하여 주방 싱크대를 어슬렁거리다가
먹이감을 찾은 야생동물처럼 싱크대 하부장을 활짝 열어재켰다.
무슨 병들이 그렇게 즐비하게 서 있는지 그들의 정체를 알고싶어
신문지를 깔고 하나하나 꺼내 보니 한짐이다.
세상에나! 유통기한이 기난 병들부터 크고 작은 병들이
올망졸망 키를 재고 있었으니 오늘은 니네들 정리해고 하는 날이렸다.
플라스틱 작은 정리함에 소스병은 소스병끼리 담고,
오일병은 또 오일병끼리 담고, 싱크대에서 얼굴자랑하고 있는 멋진 병까지
내려오게 해서 정리함에 차곡차곡 넣어주니 얼추 재자리를 잡아간다.
싱크대 위도 갑자기 훤해지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ㅎ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때 묻은 냄비도 보기에 거슬려
베이킹소다 넣은 물에 폭폭~~삶으니 내가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기분이다.
냄비 삶고 있는 동안에 , 날짜 지난 소스병 거꾸로 물구나무 서기 시켜서 내용물
깨끗하게 비워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싱크대 오른 쪽 서랍도 정리를 했다.
수저, 포크, 나이프...
일회용 비닐과 지퍼팩,
여유분의 행주와 수세미
서랍마다 뒤집어서 닦아주고 정리하니 새것 같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어찌나 잘가는지 격없는 친구와 수다타임 한거처럼
훅 지나가버리고...
2차로 잡동사니 넣어둔 싱크대 상부장을 정리하려고 했더니 힘도 없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에 날짜별로 정리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했다.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면 제풀에 쓰러지니, 하루에 한 쪽씩만 정리하자.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어느새 각이 제대로 선 유니폼처럼 반듯할게다.
사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지만 미루는 습관 때문에
오늘이 내일이 된게다.
설날 전 까지 나의 계획대로 주방,베란다, 냉장고를 깔끔하게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알 수 있게끔 정리할 것이다.
설날이 먼 것도 아니고 달력 넘기면 금방이다.
하나씩 정리하여 나도 당신보다 정리 잘 할 수 있다고
남편에게 무언의 힘을 보여 줘야지..ㅋ
하긴 요즘 남편도 그옛날에 한 깔끔덜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지고
점점 나를 닮아가는지 조금 자유분방해졌다.
그래서 내가 잔소리좀 하면 한번씩 의야해 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나, 갱년기니까 자기 조심해!" 하고 한마디 하면 슬며시 웃으며
눈치보면서 나를 피한다.
그러고보면 갱년기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