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을 닦으며
명절이 코앞이니 뭔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옛날 생각이 난다. 이만 때면 친정어머니는 놋그릇을 꺼내놓고 닦으셨다. 기왓장을 갈아서 짚으로 뭉친 수세미를 만들어서 기운껏 문질러대던 어머니. 그것은 그 먼 옛날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연례행사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황해도 고향까지를 이야기 하게 되겠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는 늘 큰댁으로 그릇을 닦으러 원정을 가곤 했다. 조상을 모시는 큰댁은 언제나 명절의 중심에 있었다. 아버지가 세 형제분이시니 세 동서가 큰댁에 모여서 행사를 준비하곤 하셨다.
삼형제 중의 막내인 어머니는 언제나 두 윗동서를 보필하는 위치에 있었다. 역으로 말한다면 윗동서들의 심부름꾼이었다는 이야기겠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머니는 다른 큰엄마들보다 많이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닌 소위 말하는 막내 동서였으니까 그랬겠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당신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다니는 나를 극진히(?)도 챙기셨던 것 같다. 가마솥 뚜껑을 엎어놓고 부쳐대는 부침개를 챙겨 먹이곤 하셨다. 나는 그 재미에 막내라는 잇점을 안고 더 그렇게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녔지 싶다.
시집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내 며느리는 유별하게도 우리 부부의 식기를 깨트리곤 했다. 이게 시집살이가 아니겠는가. 다른 걸 깨도 어려운데 하필이면 어른들 식기람.
“괜찮아요 언니. 내가 낼 사올게요.” 올케의 무안을 덮느라고 그럴 때면 막내딸이 나서곤했다.
세 번째 일을 낸 다음엔 그녀도 꾀를 냈다. 거금을 들여 놋주발대접을 사왔다.
“그걸 닦기가 어려워서 어떻게 써.”놋그릇 닦기가 어려운 걸 경험한 나는 걱정을 하지만 어쩌랴. 이미 포장도 개봉을 하고 상표까지 떼어냈으니 호사를 하게 생겼구먼.
이렇게 해서 장만한 놋주발은, 깨어지지 않는 대신 닦아 먹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래서 대충 문질러 쓰지만 이름이 명절이니 어머니 흉내를 좀 내긴 내야겠다. 기왓장이 어디 있겠는가. 주방세제를 쓰자 하니 제 빛이 나지 않는단 말씀이야.
어머니가 기운껏 닦아서 반짝반짝 윤을 냈던 것에 비해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언젠가 동대문시장을 가는 길에 노점에서 향로를 반짝반짝하게 윤을 내며 세제를 팔 던 걸 보았는데 그만 놓쳤다. 진즉에 좀 사다놓을 것을. 아니, 세제가 아니라 수세미였던 것 같은 걸?!
다음에 가면 사와야지. 아니지. 명절 앞두고 나온 거 아닐까. 에구. 달려가고 싶다. 그런데 수세미 하나 사자고 동대문까지 나가기는 싫다. 어디. 한 번 더 문질러 보자. 어머니만큼 힘을 주어 닦아 봐 봐? 잇샤~! 잇샤~! 명절 준비 힘드네. 우리 조상님들은 용하기도 하시지. 에휴~.
(명절 전에 썼던 글이다. 그냥 버리기는 내 수고가 아까워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