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 연휴는 춥지않아서 그나마 여유있어 보인다.
추우면 몸도 마음도 움추려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
언제나 처럼 우리는 설날 다음날에 친정집을 방문한다.
제일 가깝게 사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내가 속이 안 좋아 계속 누워있었으니 내탓이다.
입술까지 부르튼 모습에 립스틱을 안 바를 수 도 없고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모처럼 한복을 입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번거로워 단정하게 투피스차림으로 정했다.
현관 앞에선 벌써 고소한 기름내샘가 풍긴다.
베란다 쪽에서는 동생이 배추전을 열심히 부치며제주 옥돔을 굽고 있고올케는 잰걸음으로 점심준비에 정신이 없어보인다.
우리 딸만 참석 못해서조금 허전했지만그래도 17명의 그득한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니 상이 비좁다.
점심을 먹기 전에 새배부터 하는데 손주들 새뱃돈 봉투를 두둑하게 준비하신 우리 엄마,
우리아들과 조카에게 새배돈 봉투를 주시더니 고개를 가우뚱거리시네?눈치빠른 남동생이 다가가서 거든다.
봉투는 똑같은데 이름을 써놓지 않아서 조금 헷갈리신 게다.
엄마두 연세가 몇이신데 하물며 나도 봉투에 이름을 적어 놨는데이름도 안적으셨으니 당연히 헷갈리시지요.
동생이 봉투 속을 보더니 아들과 조카에게 준 새배돈을 다시 회수하고,
찬찬히 정리를 해주면서새배돈을 조카들에게 나누어줘서 우리가 얼마나 웃었던지...ㅋㅋ
동생들은 외국에 있는 우리딸의 새뱃돈도 잊지않고 챙겨주니 정말 고마웠다.
막내 서방님도 전 날, 카카오뱅크로 우리딸에게 새뱃돈을 넣어주니
한국의 은행계좌가 없어서안된다고 엄마에게 대신 넣어주시면
나중에 자기가 받겠다는 말에얼마나 야물딱지냐며 우리동서가 한참이나 웃었지..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들어가는 조카가 있어서 봉투로 주려다 카뱅으로 넣어 준다고 하니 고맙다 하더니만
24시간내에 찾지 않아 다시 내 구좌로 되돌아 와서한바탕 소동치며 또 동서가 전화통화해서는
자기가 그렇게 정신이 없다며이야기를 하는데 참 새로운 문화가 좋긴한데 봉투가 편하다 싶기도 하다.
한차례의 점심을 물리고 티타임시간이 되었다.당연히 올케가피곤하다는 걸 알기에 방에서 쉬라하니남동생과 얼른 들어간다.
우리는 엄마가 좋아하는 수다타임.둘째 제부는 공치러 나가고 남편은 링겔 맞고 계시는 아버지와올림픽 중계 보느라 바쁘고,
막내 제부는 온데 간데 보이지는 않는그 시각에 엄마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지졌다.
그러면서 방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더니우리에게 가디건을 보여주시며 입어보란다.
"엄마는 무슨 돈이 있으시다구 우리 옷을 사셨어요.?""우리가 사드려야 되는데.."
엄마는 손사레 치시며 당신이 좋아서 산 것이니 그냥 입어 보면 된단다.
재빠른 동생은 벌써 자기 옷을 챙겨놓은 상태다,디자인은 똑같은데 색상이 조금씩 달랐다.
동생들이 먼저 챙기고 남은 옷이 내 옷이 되었는데브라운 칼라의 줄무늬 옷이라 조금 나이가 들어보인다.동생들은 흡족해하는 눈치다
.검정과 곤색이니 깔끔하고 내가 봐도 괜찮았다.
"엄마, 이 옷 엄마가 입으세요. 전 옷도 많고 지난 가을에도 사주셨는데 그냥 엄마 입으세요."
눈치 백단이신 엄마가 "그럼 바꿔줄까" 하시네못이기는 척 하면서
"바꿔 주시려면 검정에 줄무늬로 바꿔주시고 아니면 엄마가 입으셔도 되요"ㅎㅎ
우리엄마는 센스도 있으시고 옷 사시는 걸 좋아하신다.동네 어르신들이 엄마가 입은 옷을 보고 어디서 샀냐며 종종 묻는단다.
그러면 엄마는 엄마가 옷 산 매장을 소개해주시고그곳에선 소개를 받았으니 고마운 마음에 엄마가 옷 사실 때 좀더 깎아 주신단다.
올케가 있을 때 옷을 줘도 되지만 그래도 엄마는 올케눈치를 보시는지조심스럽다.
늘 올케에게 용돈도 주시고 병원에 계시는 안 사돈도 챙겨주시며 이번에도 들어온 좋은 물건은 싸 갖고 가라고 하시는 엄마인데
딸에게 옷사주는 건 그냥 눈치 보이나보다.
명절 준비때문인지 설날당일부터 복통에 고생이 많았는데엄마의 귀여운(?) 행동으로 잠시 복통을 잊고 즐겁게 친정나들이를 했다.
집에 도착해서 한숨 자고 있는데내폰에서 울리는 벨소리~~~
" 아프지 말고 꼭 병원 가봐라..내시경도 해보고, 건강이 최고라는거 너도 잘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