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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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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란 말이냐


BY 만석 2018-02-05

어쩌란 말이냐

 

바람이 불어서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다. 머리에도 털모자를 얹고 목에도 털목도리를 둘렀다. 목도리를 올려 마스크처럼 입까지 가렸다. 추워도 햇살은 밝아서 시원찮은 내 안구를 마구 쪼아댄다. 선그라스를 끼었다. 완전 무장을 확인하고 대문을 나선다.

 

전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허리를 두드린다. 돌아보니 아직 미취학인 듯한 여자아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생긋 웃는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난 엄마랑 파랑새극장에 가요. 파랑새극장은 대학로에 있어요.”

 

묻지도 않는 말에 해설까지 붙여서 말을 건넨다.

파랑새 극장에서 뭐하는데?”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야무지다.

 

그러냐?” 가볍게 응수를 하고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새 엄마와 손을 잡고 선 아이는 아주 오랫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 같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런 표정이다. 깊은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칠 지경이다.

 

그런데 얘야. 내가 할머니 같으니? 이렇게 꽁꽁 싸맸는데 어떻게 할머닌 줄 알았어?”

우리 할머니랑 똑같이 닮았는데 뭘.”

아이의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도 모르고 아이 엄마와 나는 시선이 마주치자 웃었다.

 

할머니라. 전철을 타고 내내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어디를 봐서 할머니라는 걸 알았느냐는 말이지. 아이 앞에서 늙은이 특유의 그 걸음걸이를 보인 것도 아니다. 아직 말을 건네기 전이었으니 음성으로 알았을 리도 없다.

 

혹 늙은이 냄새가 난 게야? 그랬던 게야? 아니 벌써? 어쩐다? 그럴까봐 진즉에 향수도 살짝 뿌렸었는데. 아직 그럴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더라도 어쩌겠는가. 아직 사라져줄 생각은 없는데. 큰 일이로고.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음 좋겠다. 다시 물어 보게.

 

어쩌랴. 그래도 그냥 좀 봐주시게들. 이 모양 이대로 좀 봐주면 안 되겠나?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으면 아니, 늙으면 사라지게 한 섭리는 참 잘한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유지 되겠어. 참 잘한 이치다. 나는 시방 참한 그 이치를 수행중이다. 잘 실행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