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당신과 나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 만나서 부부로 산다. 감히 다른 부부를 언급할 주재도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는 그렇다. 그렇다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똑 같지 않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가지 않지만, 어쩌면 똑 같은 생김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조물주는 참으로 영특하시다.
그러고 보니 참 재미있다. 우리 부부를 보자. 넓적한 얼굴의 남자에 길쭉한 용모의 여자. 뱁새눈의 남편과 황소 눈의 아내. 히말라야의 어느 산봉우리를 닮았을까 싶은 뾰족한 날샌돌이 코와, 복코라 불리는 뭉툭한 콧 망울의 만남. 180cm의 롱다리와 157cm의 숏 다리. 그래서 조화롭다는 우리 부부의 자화상이렷다.
뭐, 생김이야 부모님을 따로 두었으니 당연하다 치자. 그렇기로 성격까지 달랐으랴. 말이 떨어지면 달려들 듯 답이 나와야 내 직성은 풀리고, 매사에 함흥차사를 불러대야 나타나곤 하는 영감이다. 가슴이 녹아내릴 듯한 따스한 물이 좋다 하면 코끝이 찡하도록 찬 냉수가 좋다 한다. ‘복면가왕’이 재미있다 하면 ‘가요무대’를 고집한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것까지야.
그래도 키가 크니 넓적한 얼굴이 제격이고, 짧은 키에 보탬이 되라고 긴 얼굴을 달았으니 다행이라고 서로를 자위하며 살았다. 2세의 적당한 코를 위해서 뾰족코와 복코가 만났다고 손뼉을 치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는 롱 다리를, 딸들에게는 숏 다리를 달아주었다. 급하고 둔한 성격도 아들은 제 아비와 딸들은 제 어미를 닮았으니 누구를 탓하랴.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둔탁한 소음을 내며 돌아갔지만 그래도 곧잘 굴렀다. 우리는 서로 ‘내 덕’이라며 살아왔지만, 이제 이 나이가 되니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 서로 ‘내 탓’이라고 가슴을 쓸어 본다. 누구 덕이면 어떻고 누구의 탓이면 어떠랴. 그 자화상으로 이만큼 살아냈으니 장하다고 서로의 등을 두드리는 요즘이다.
이젠 다툴 일도 없고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 같은데도 아직도 그 짓(?)을 마다 않는다. 누구의 말대로 숙명일가? 나의 네 자매들 결혼생활을 보아하니 나보다는 다 잘하고 사는 것 같다.
“아, 잘했어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이지. 다시 태어나서 나도 그렇게 좀 살아봤으면 싶기도 하다. 그럴라치면 내가 변해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예쁜 얼굴을 달고 롱 다리로 태어나고 싶은 욕심은 없다. 마음에 좀 들지 않아도, 덮어 줄 수 있는 아량을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아, 영감도 다시 태어날 때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당신 맘대로 하세요.”
“그게 좋겠네요.”
“난 괜찮아요.”만 말하는 남자라면 어떨까? 그럼 내가 얼른 주워서 데려 올 텐데 말이지. 너무 재미 없으려나? 후후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