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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


BY 낸시 2017-09-23

자식 농사는 반타작이면 다행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들은 말이다.
그 만큼 영유아 사망율이 높았다는 뜻이다.
우리 때는 실제 나이와 호적 나이가 두세살 차이지는 경우도 많았다. 
죽을지 살지 모르니 기다렸다 출생신고를 하였을 것이다.
우리 형제는 다행히 하나도 일찍 죽은 사람이 없다.
운이 좋아서였을까...아니다 아버지 덕이었다.
 
바로 위 언니가 초등 일학년 때 디프테리아에 걸렸다.
농촌에서 병원 다니는 것이 드물던 때, 아버지는 언니를 소아과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
며칠을 다녀도 낫기는 커녕 병세가 점점 심해졌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굿판을 벌였다.
병이 났을 때, 병원보다 굿이 더 흔하던 시절이긴 하다.
돼지우리를 옮긴 것이 동티가 나서 그러니 굿을 하면 낫는다...무당의 말이었더란다.
마당에서는 굿판이 벌어졌는데 언니는 호홉곤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소아과에서 금방 돌아온 길이었지만 아버지는 언니를 다시 들쳐업었다.
버스도 흔치 않던 시절이니 언니를 업고 시오리길을 도립병원을 향해 뛰었다.
개인병원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이었다고 하였다.
숨이 넘어가는 딸을 등에 업고 시오리길을 달릴 때 아버지 마음은 어떠셨을까...

의사는 바로 기관 절개수술에 들어갔고, 두 시간만 늦었으면 죽을뻔 하였다고 하더란다.
도립병원 입원실은 온돌방이었고, 난방은 환자 가족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었다.
썰렁한 입원실에 수술이 끝난 언니를 눕혀놓고 장작을 사다 불을 지폈다.
장작불을 활활 피워놓고 방에 들어가니 언니가 무슨 말인가를 하는데 기관지 절개를 했으니 소리가 되어 나오지를 않는다.
초등 막 입학을 해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종이와 연필을 구해다 주었더니 쓴 글씨가 '배고파'였다.
절개한 기관지에 끓는 가래를 수시로 제거해 주어야 하니 멀리 갈 수는 없다.
전화가 없으니 집에는 연락할 방법도 없고, 병원 앞에서 사과를 사다 수저로 긁어 먹였더니 언니가 비로소 배시시 웃더란다.
이제는 살았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쓸었다고 하였다.
 
모기 파리 쥐가 들끓고 환경이 열악하던 시절이니 병도 흔했을 것이다.
자식 넷을 오롯이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까...
봄 가을로 편도선염을 앓던 나는 어찌나 자주 먹었던지 아버지가 지어다 준 한약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필용방감길탕, 그 약을 먹으면 부어서 침을 삼킬 때마다 뜨끔거리던 목이 가라앉았다.
 
암튼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유별났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 아버지는 우산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 올 줄 알고, 아마도 버스를 하나 둘 그냥 보내고 기다린 날도 많았을 것이다.
농사 일에 바쁜 다른 부모들은 비 온다고 우산들고 마중나오지 않았는데 우리아버지는 자식 농사가 우선이었다.
큰 비에 마을 앞 냇가 다리가 떠내려가고 물살이 센 날, 모든 부모가 자식을 업어 건네기 위해 나오진 않았다.
아버지 널찍한 등에 업혀 냇물을 건너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남매,  육십이 넘어도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우리아버지 자식 농사는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