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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살이


BY 엉터리 맘 2017-09-23


3. 큰집살이
동란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산 밑 외딴곳에 있는 집이여서인지 타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전쟁통에 여윈지라 우리는 할아버지가 계신 큰아버지댁에 얹혀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들로 인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내외분 사이에 크고 작은 분란이 잦았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식사하는 자리에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내려오라 하셔서 사랑채로 데리고 내려갔는데, 밥도 들고 내려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큰어머니께 막내여동생 밥을 주시라고 하니 여동생을 데리고 웃방으로 올라오라고 하여 사랑채에 있는 여동생을 다시 데리러 내려가니 할아버지가 조카들을 거두지 않을거면 감나무에 매달아 굶겨죽이자 하고 집안에 있던 감나무에 새끼줄로 여동생을 매다는 시늉을 하며 난리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부모없는 자식들 밥이라도 맘껏 먹이자고 옆에 끼고 먹이려고 하셨는데, 이것에 순종하지 않는 아들,며느리에게 본때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러한 분란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큰아버지는 자식이 딸 하나뿐이였으니 뼈 빠지게 벌어봐도 부모사랑에 허기진 우리 삼남매 먹성과 할아버지의 애달픈 사랑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동란에 제대로 남아 난 것이 없는데 삼시 세끼 떼거리 제대로 챙기는 집이 몇이나 된다고 끼니때마다 조카들 끼니를 시아버지가 직접 챙기시니 큰어머니로써도 고역이셨을것이다.
전쟁 후 학교 다닐 때를 놓친 나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후에 한글 교육을 했는데 나도 한글학교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 두고 온 동생들 걱정에 도통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또 공부하고 올 때마다 오늘은 뭘 배웠냐고 어른들이 물어보시는 통에 답을 못 할 때마다 부끄럽고 죄송하여 학교 다니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남동생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를 다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걸어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보냈다.
18살 시집오기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새벽밥을 하여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착실히 등교를 시켰는데 시집오고 얼마 뒤 학교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집을 조금만 늦게 올 것을 후회가 되었다.
입 하나 덜자고 보낸 시집에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부모없는 설움에 눈물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