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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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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행복 긴 슬픔 12


BY 러브레터 2017-09-12

상덕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휴지로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다.

우리 아빠 돈 버느라고 고생이 많네!”

아빠!힘들어도 참아!”

민아는 상덕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상덕은 싸였던 피로가 모두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딸이기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했다.

민아는 침이 잔뜩 묻은 뻥튀기 하나를 상덕의 입에 넣어 주었다.

상덕은 입안 가득 뻥튀기를 집어넣고는 함박웃음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다.

이마에는 여전히 땀방울이 맺혔다.

이번 겨울은 너무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개발한 과일 떡볶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채소 떡볶이보다 어 반응이 좋았다.

 

과일을 많이 먹어야 미인 된다는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오늘 복고풍 라디오에 오신 손님들은 다 미인이네요!

여기도 미인..

저기도 미인...

그래서 이 규오빠는 너무 행복해요.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하나 신나는거 들려 드리겠습니다.

조성모의 다짐들려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또 오시리라는 다짐 받아 놓으면서 ..

새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해요!

 

은규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안오셨네요!

바쁘신가봐요!

오늘부터 뻥튀기도 파는데 시식하러 오세요!

 

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노래가 다 끝나도 여전히 문자만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기억속에 아른거리는 그녀가 너무도 그리웠다.

턴테이블에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올려 놓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희철은 그런 은규를 위로해 주려 신청곡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오늘 오랜만에 한 잔 하자!

어떻게 매일 떡볶이 먹으러 오냐?

나같아도 질려서 안오겠다

희철은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오를 신청했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주방에서 희서는 분주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그래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는 하순을 바라보았다.

상덕에게 줄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순으로 인해 다시 행복을 찾은 상덕이 다행스러웠다.

이제 상덕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건 하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마워요!”

하순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순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뭐가 고맙다는건가요?”

한참동안 희서를 바라보았다.

상덕씨랑 행복하게 살아주어서..”

하순은 그냥 웃기만 할뿐이었다.

난 아직도 희서씨가 부러운걸요!”

아직까지 사랑받는건 희서씨잖아요!”

난 그냥 잠시 기대고 있는 언덕일뿐인걸요!”

하순은 고개를 떨구며 긴 한숨을 쉬었다.

아니예요!”

그건 절대 아니예요!”

상덕씨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하순씨예요!”

희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순은 준비한 간식을 번쩍 들고 나가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까 고맙네요!”

상덕이 좋아하는 떡국냄비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 열심히 뻥튀기를 튀기고 있는 상덕이 안쓰러웠다.

얼굴이 그을음으로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하순은 물수건으로 상덕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상덕은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얼어 있는 그의 손을 본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및으로 말했다.

추운데 안에 들어가서 먹어요!”

이거 나도 할줄 알아요!”

하순은 능숙한 솜씨로 뻥튀기를 튀겨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느껴졌다.

상덕은 주방으로 들어가 떡국을 먹었다.

희서는 상덕의 편한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 행복하니?”

!”

널 보면 왜 이렇게 내가 아픈지 모르겠다!”

상덕은 입가에서 맴도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녀가 느끼는 그 행복을 차마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눈가에 눈물만 고일뿐이다.

사실대로 말을 해야한다는걸 알면서도 아파하는 그녀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상덕은 목줄기로 하지못한 말들을 삼켜 버렸다.

하순씨를 위해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민아가 너무 예쁘더라!”

상덕씨랑 너무 닮았어!”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캄캄한 방안이 무서웠다.

일상처럼 다가올 순간들이 공포스러웠다.

머리를 감싸쥐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어둠 사이로 그녀의 흐느낌이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해도 너무나 가혹했다.

손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았다.

불을 켜자 도저히 눈이 부셔 눈을 뜨고 있기가 괴로웠다.

다시 불을 끄고 악을 쓰며 울어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차라리 지독한 악몽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룻밤이면 지나가 버릴 순간적인 악몽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샤워기를 틀고 한참동안 흐느껴 울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아찔했다.

아무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았다.

초라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채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들었다.

맥주잔에 가득 부어 한 모금에 마셔 버렸다.

술기운에라도 잠이 들려고 애를 섰지만 여전히 눈가에 눈물만 흐를뿐이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은 멈추지를 않았다.

다시 소주를 맥주잔 가득 따랐다.

숨도 쉬지 않은채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양주병이 하나 눈에 띄었다.

며칠전 주류 전문점에서 산것이었다.

얼음도 섞지 않은채 스트레이트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서랍에서 수면제병을 꺼내 들었다.

약을 꺼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약에 취해서라도 잠을 청하고 싶었다.

정신이 몽롱한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때는 병실이었다.

희서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희철이 눈에 들어왔다.

또 다시 그에게 상처를 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상처를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순간들이 무너져 버렸다.

그녀는 도저히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눈을 감은채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영원히 깨지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었지만 더해지는건 아픔분이었다.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파왔다.

이를 악물고 참아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머리를 조여오는 통증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희철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안으며 그가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내 곁에만 있으면 되는거야!”

네가 앞을 볼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대신 네 지팡이가 되어주면 되잖아!”

그녀는 이불을 박차고 앉아 그의 품에 안겼다.

차마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프게 못이 박힌 그의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미안해!”

떨리는 입술위에 그의 입술이 다가왔다.

이제 다시는 울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날들로 가득하기를 기도했다.

식은땀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가 말했다.

혼자만 아파하지 마!”

너 혼자 아파해서 남는건 더 큰 아픔뿐이야!”

오랜만에 가게가 쉬는 날이다.

가게에 손님들이 늘어나 확장공사를 하기로 했다.

방앗간을 주방으로 옮기고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복고풍 분위기를 한 층 더 살려 추억이 묻어나는 곳으로 꾸몄다.

힘들게 구한 만화영화 포스터들을 벽에 붙였다.

70년대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의 만화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상덕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벽에 붙이는 내내 힘든줄도 모르고 추억에 잠겼다.

한쪽 진열대에는 옛날 담배들을 진열했다.

하순은 수많은 담배들을 바라보며 신기해 했다.

우리나라 담배가 이렇게 많은줄 몰랐네!”

민아는 진열장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신난다고 난리였다.

그 옆에는 성냥갑과 라이터들이 자리했다.

까페마다 돌아다니며 열심히 모은 성냥들이 한가득이었다.

희서는 성냥갑 모으는걸 좋아했었다.

상자 가득 자리할때마다 뿌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자식들을 출가시키는 기분으로 진열장에 진열했다.

한쪽 벽에는 종이인형을 걸어 놓았다.

희서의 보물 보따리속에서 나온것들이다.

어린 시절 종이인형 놀이를 무척 좋아했었다.

보물처럼 아껴온 것들이기에 몇 번을 망설였었다.

한 쪽 벽면에는 딱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희철이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것들을 큰맘먹고 내놓은것들이다.

한 쪽 벽면에는 추억속의 스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희서는 스타들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풍미했었던 조용필 사진을 어루만지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상덕은 박남정 사진앞에서 널 그리며춤을 추면서 그리워 했다.

희철은 이선희 노래를 좋아했었다.

소방차사진을 보자 하순은 환호성을 질렀다.

학창시절 양쪽으로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던 시절을 그리워 했다.

민아는 그런 모습들을 지켜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 아저씨랑 아줌마들은 누구야?”

상덕이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명해 주었다.

아빠랑 엄마 삼촌 이모 어릴적 인기있던 가수들이야!”

민아는 그래도 모르는 눈치였다.

인기가 있는데 왜 민아는 모르는거야?“

민아는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인기가수들이라서 그래!”

민아는 사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아직도 궁금한 눈치였다.

지하 디제이 부스가 보이도록 한 쪽 벽면을 투명유리로 장식했다.

희서는 마루인형을 보자 반가워 한참동안 어루만졌다.

어릴적 유일한 그녀의 친구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건 엄마가 아니라 마루인형이었다.

방안 가득 놓여진 장난감들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인형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탓에 그녀는 늘 혼자 놀아야 했다.

인형과 대화하고 인형과 밥을 먹고 인형과 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다.

어릴적 추억이 가득 담긴 마루인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민아는 한쪽에 진열된 추억의 껌들을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우와!껌종이가 너무 예쁘다!”

에뜨랑제껌종이를 집어 들머 소리쳤다.

하순은 껌종이를 하나 집어 들며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껌종이를 모아 종이접기를 하는게 취미였었다.

유리병 가득 껌종이로 접은 학과 거북이들을 가득 채우곤 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브껌이 반가웠다.

요즈음은 껌도 너무 비싸서 못씹겠어!”

희철은 껌들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묻어나는 소중한 껌들이다.

수퍼 가서 껌 사먹으려다가 기절하고 나온다!”

하얀 돌맹이처럼 생긴것들이 왜 그렇게 비싸냐?”

상덕은 껌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희서는 벽에 붙은 추억의 구멍가게 사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용돈이 생기면 부리나케 달려가 군것질을 하던 그 가게가 그리웠다.

아직도 그 곳에 가면 남아 있을까?”

엄마 몰래 외상으로도 많이 사먹었었는데...”

그녀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미소를 띄우며 희철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아주 오랜만에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했다.

어제 내린 눈으로 온통 새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벤치의 눈을 털고 그녀를 앉게 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그녀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녀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일부터 주방일 힘드니까 쉬어도 돼!”

더 이상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날 벌써 장애인 취급하는거야?”

나 아직 멀쩡하게 잘 보여!”

어떻게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어?”

흥분하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그가 말했다.

흥분하지마!”

널 장애인 취급하는게 아니야!”

그렇게 말을 하는 그가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럼 이게 장애인 취급하는게 아니면 뭐야?”

날 가지고 노는거야?”

아니면 장사가 잘 되니까 걸리적거린다는거야?”

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악을 썼다.

너 지금 말 다 했어?”

너 없으면 한시라도 못살고 불안해 하는거 알면서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니?”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나 없으면 한시라도 못산다는 사람이...”

일을 그만 두라고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네가 볼 수 없으면...”

내 눈이라도 뽑아줄게!”

그것도 안되면...”

내가 영원히 네 눈이 되어줄게...”

그러니까...”

죽고싶다는 생각만 하지마...”

널 쉬게하고 싶을뿐이야...”

울먹이는 그녀를 안아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너무도 행복했다.

남은 시간들을 함께 해도 후회가 없을만큼 너무도 든든한 사람이었다.

가슴 가득 그를 사랑하고 잇다는걸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사랑해....”

그녀는 처음으로 고백했다.

떨리는 그의 입술에 입술을 마주하며 눈빛으로 속삭였다.

 

 

오늘은 희서에게 프로포즈하는 날이다.

희철은 아침부터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게안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듯 꼼꼼하게 준비했다.

은규는 프로포즈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유난을 떠는 희철이 얄밉기도 하면서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상덕은 희철이 부탁하고 지시한대로 바닥에 양초들을 그림에 맞춰 정리해 놓았다.

혹시라도 그림이 망가질까봐 조바심내며 조심스fp 맞추어 나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백장미로 하트르 만들어 한가운데 장식해 놓았다.

희철은 양초 하나하나에 불을 붙이며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순은 희서가 눈치채지 않게 일부러 시간을 끄느라 애를 먹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희철에게 전화를 하려는 그녀를 억지로 말리느라 진땀이 났다.

가게안은 어느새 촛불잔치 분위기였다.

활활 타오르는 촛불들 사이로 비치는 백장미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희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가게문을 연 그녀의 눈앞에는 촛불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촛불 사이로 내딛는 발걸음이 불안했다.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그녀에게 고백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녀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환한 촛불사이로 가려진 길사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더 흐릿하게 보였다.

그녀는 발을 헛디뎌 그만 촛불 사이로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그녀의 치마사이로 촛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온몸이 불길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가게안은 순식간에 불길속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몸에 붙은 불을 꺼보려 안간힘을 썼다.

웃옷을 벗어 간신히 불을 끄고 등에 업었다.

응급실로 달려가는 마음이 무거웠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마자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실앞에서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열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뎌내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부디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할뿐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그녀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온몸에 붕대를 감은채 기약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채 한참동안 흐느껴 울었다.

미안해...”

너한테 너무 큰 아픔을 안겨줘서...”

미처 몰랐어...”

네가 보이지 않을거란걸....”

아무리 울며 애원해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의사앞에 다가서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화상이 너무 심해 여러 차례의 수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환자가 간암말기란건 알고 계셨습니까?”

청천벽력같은 말에 그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차라리 꿈속에서 들은 말이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환자의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심한 피로 누적으로 힘이 들었을텐데 말입니다!”

피부 이식도 중요하지만..”

간이식도 중요합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가 힘들었다.

이제 행복한 사랑을 시작하려 하는데 너무도 가혹한 형벌만 계속되고 있었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울부짖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온 상덕은 놀라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는 그를 보며 당황했다.

무슨 일이야?”

눈을 감고 흐느낄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순에게 희서를 부탁하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희철은 소주잔만 비우며 흐느낄뿐 침묵속에 잠겼다.

희서가 간암이래!”

상덕은 마시던 소주잔을 든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를 노려 보았다.

너 지금 술주정하는거지?”

! 이 새끼야!”

술주정도 곱게 해!”

헛소리할게 따로 있지!”

?간암?”

다시 한 번 그따위 헛소리 짓걸이면 ..”

네 주둥이 찢어버린다!”

상덕은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상덕의 손을 뿌리치며 그가 소리쳤다.

내가 미쳤다고 그런 헛소리를 해?”

간암말기라서 이식이 급하다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매도하는 미친놈으로 보여?”

그는 술병을 한 번에 들이켰다.

빈 술병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 소주상자째 갖다 놓으세요!”

일어서서 소주상자를 들고 오려 하자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는 차라리 술에 취해 죽고만 싶었다.

가슴 찢어지는 이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가혹한 현실속에서 견뎌낼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울부짖으며 깡소주를 연겨푸 들이켰다.

술에 취한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상덕은 그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아픔이 타버린 가게보다 더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어두운 창밖을 멍하니 눈물로 바라보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되자 신음소리를 내며 그가 눈을 떴다.

나 물좀 줄래?”

상덕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핼쓱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미안했다.

어쩌다가 이런 꼬인 운명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

간검사 나도 같이 받자!”

네가 안맞으면 나라도 이식해 줘야할거 아니야?”

그는 그런 상덕이 고마웠다.

가게는 화재보험금으로 새단장을 할 수 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희철과 상덕의 마음은 무거웠다.

혹시나 맞지않아 이식을 못하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트를 들고 들어오는 의사는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매간의 애정이 대단하네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남매간이라니요?”

선생님!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의사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이었다.

남매지간인것도 모르셨단 말인가요?”

세 분이 남매인걸로 나오는데요!”

희철은 의사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의사양반!”

저기 누워 있는 환자랑 난 애인사이야!”

결혼을 약속한 사이란 말이야!”

근데 뭐?”

남매지간?”

당신 어제 먹은 술 아직 안깬거 아니야?”

상덕은 그런 희철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선생님!”

그러니까...”

환자랑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친남매란 말씀.....이신가요?”

상덕은 목이 메어왔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상덕은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돼!’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상덕이 사랑했던 희서가 친동생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의사는 두 사람 다 이식이 가능하다며 한참동안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멈춰진 화면일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모든게 멈춰버리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희철은 아무것도 모른채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을 감고 누워있기에 마음껏 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