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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랩소디8


BY 러브레터 2017-09-12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희서표 초콜렛을 두 상자씩이나 받았다.

 

"초콜렛 다 녹는다!"

"얼른 내려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다 녹아버렸으면 어떻게 하지?"

 

희철은 상자를 열어보며 짖궂은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에 오늘의 추억을 가득 담았다.

영원히 잊지못할 하트 초콜렛을 하나하나에 셔터를 눌렀다.

 

"내가 찍어줄게!"

 

희서가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렌즈속에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그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득 담겨졌다.

셔터를 누르는 내내 눈가에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멀리 돌아 힘들게 찾아온 행복이었다.

쉽게 다가올 수 있는 행복을 외면하며 지내왔다.

눈물로 흐려진 렌즈앞에서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억지로 태연한척 하며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예쁘게 찍었어?"

 

희철은 모르는척 하며 태연하게 물었다.

렌즈에 얼룩진 그녀의 눈물이 아프게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지?"

"나 혼자 힘든것처럼 너무 멀리 돌아왔어!"

"오빠가 이런 작은 선물로 감동할줄 몰랐어!"

"....................................."

 

그녀는 목이 메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해야 하는 그녀를 눈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손을 잡고 일어섰다.

 

"나가자!"

 

커피 전문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금의 이 사랑이 절대로 힘든 사랑이 아니란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한 그 사랑은 영원할것이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희철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한참동안 환하게 웃었다.

낙엽들이 바람에 흩어져 눈처럼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언제나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두 사람이었다.

한강변을 바라보면서 희철이 말했다.

 

"오랜만에 유람선 탈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한강변을 가로지르는 여유로움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희서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유람선에 올랐다.

머리결을 스쳐가는 칼바람이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느껴졌다.

평일이라 그런지 유람선을 타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매일 이렇게 한가했으면 좋겠다!"

"그치?"

희철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꼭 우리가 전세낸것 같잖아!"

 

그녀는 희철의 어깨에 기대었다.

언제 기대어도 편안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그녀는 희철의 어깨에 기대는걸 좋아한다.

슬픔도 아픔도 견뎌내며 긴 시간을 기다림으로 버텨온 든든한 어깨다.

그런 희철이 곁에 있기에 마음이 놓였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땀냄새가 더 사랑스러웠다.

희철의 품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잠이 든 그녀의 머리결을 어루만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도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흐린 먹구름 사이로 빗방울이 흩어져 내렸다.

늦은 가을비였다.

강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쌀쌀한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희철은 점퍼를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배를 탄것도 잊은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희철은 그녀의 잠든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영원히 곁에 두고 함께 하고픈 사람이었다.

 

"언제나 영원히 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런 사람! ”

"너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가식적인 말!"

"우리 서로에게는 하지말자!"

"난 널 너인 그대로 사랑하고 싶어!"

"너도 날 나인 그대로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

 

희철은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으로 속삭였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빗발울이 점점 굵어져 창문을 세게 내리쳤다.

그녀는 빗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희철의 젖은 눈이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젖은 희철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먹구름 가득 내려앉은 창밖의 흐린 하늘만 바라보았다.

선착장에 다다르는 내내 눈물로 빗방울을 맞이할뿐이었다.

 

강바람이 옷자락을 세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자마자 비바람에 견디지 못해 망가지고 말았다.

희철은 재킷을 벗어 그녀의 머리를 덮어주었다.

 

"뛰자!"

 

그녀의 손을 잡고 한강변을 달렸다.

스산한 찬 바람이 뺨위를 아프게 스치고 지나갔다.

빗줄기는 더 거세져 폭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편의점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창밖이 보이는 의자에 앉히고 온장고 문을 열었다.

캔커피 두 개를 꺼내 희서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선 언 손 먼저 녹여!”

커피가 따뜻해서 금방 풀릴거야!”

그녀는 캔커피를 두 손 가득 꼭 쥐고 차가워진 손을 녹였다.

희철은 그녀의 곱은 손을 어루만지며 미소지었다.

 

"잠은 이제 다 깼겠네!"

 

비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캔커피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건넸다.

창밖의 비 내리는 풍경은 쓸쓸하기만 했다.

하늘은 점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캔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그녀가 말했다.

 

"가을은 왜 이렇게 쓸쓸하고 아픈 계절일까?"

 

희철은 그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겨울보다는 덜 아프고 덜 쓸쓸하겠지!"

그럼 우리 사랑은 어떤 계절일까?"

"?"

"여름?"

"가을?"

"겨울?"

 

그녀는 희철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것 같아!"

희철은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다.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이 희철은 자신없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런 희철의 자신없는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내 희망사항은 뜨거운 여름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널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찬 바람이 불어와!"

 

그녀는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다.

다가오지 못하는 아픔을 삭이며 살아온 시간들이 아프게 느껴졌다.

 

사랑을 포기하는건 아닐까?"

"그럼 우리 사랑...."

"이대로 겨울로 가는걸까?"

 

희철의 대답이 두려웠다.

 

"아니!"

"여름이 가지못하게 붙잡아야겠지!"

"겨울이 온다고 해도 널 떠나지는 않을거야!"

"네가 떠나지 않는한..."

 

희철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그녀는 희철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

따뜻한 캔커피에 두려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드는것 같았다.

비는 좀처럼 쉽게 그칠것 같지 않았다.

커다란 우산을 하나 사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희철은 우산을 펴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걸었다.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여기서 소주 한 잔 하고 갈까?"

 

손을 잡고 포장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마치 안은 온기가 가득했다.

따뜻한 오뎅국물과 닭똥집을 안주로 시켰다.

그녀는 오뎅국물을 마시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이제야 속이 좀 풀리네!"

희철은 소주를 잔에 따르며 말했다.

 

"어제 나 몰래 술 마셨니?"

앞으로 의리없게 혼자 술 마시기 없기다!"

 

잔을 들며 신신당부했다.

 

"무엇을 위해 건배할까?"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술잔을 요란하게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희철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떠나버린 사랑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술잔은 밤이 깊어질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늘따라 술을 마시는 내내 마음이 즐거웠다.

희철은 술기운을 빌려 고백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희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희서야!"

"그러니까 우리는 죽을때까지 ..."

"아니 죽어서도 헤어지면 안돼!"

새끼 손가락을 걸며 서로의 사랑을 약속했다.

포장마차를 나서는 길목은 쓸쓸한 가로등만이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잠시 주춤하던 빗방울이 다시 거리를 우울하게 적시고 있었다.

제법 가을다운 날씨를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가을비를 머금은 가랑잎들이 발길을 옮길때마다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바람에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가슴에 싸여있던 근심들을 다 털어내는 기분이었다.

희철은 차가운 새벽공기에 술기운이 달아나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거니는 새벽길이 너무도 행복했다.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떨려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희철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통을 이기지못해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소리를 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희철은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가 불덩인데!"

"병원에 가야겠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싶어!"

 

희철은 그녀를 등에 업고 골목길을 달렸다.

그녀가 숨을 쉴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등줄기를 타고 스며들었다.

 

"안뛰어도 돼!"

"힘드니까 천천히 가!"

 

희철은 병원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도 가벼운 열감기였다.

링거를 꽂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다행히도 열은 금방 내렸다.

그녀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잠을 이루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업드려 잠이 든 희철의 머리결을 어루만졌다.

창밖의 빗줄기는 아침을 맞으며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흐린 가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링거를 다 맞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것 같았다.

링거액이 반도 더 남아 있었다.

그녀는 열이 내려서인지 입안이 바짝 마르는것 같았다.

곤히 자는 희철을 깨우기가 미안했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희철은 그녀의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왜 일어났어?"

"목이 말라서..."

"편의점 다녀올게!"

 

희철은 편의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 넣지않은 이온음료와 따뜻한 죽을 샀다.

그녀는 이온음료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죽을 먹으려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엇다.

온몸에 느껴지는 오한으로 수저를 든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조금전에 내렸던 열이 다시 온몸에 퍼져왔다.

그녀는 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침대에 누웠다.

이른 아침길을 달려 죽을 사온 희철에게 미안했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희서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앉아있는것조차 힘이 들 정도로 심하게 아파왔다.

희철은 그녀를 무릎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가는내내 그녀는 희철의 무릎에 기대어 억지로 잠을 청했다.

 

택시에서 내려 그녀를 등에 업었다.

등에 업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링거를 맞은 그녀의 팔에 방수용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그냥 자면 감기에 걸리니까 목욕하자!"

 

그녀를 부축해서 욕조에 조심스레 눕혔다.

거품 목욕제를 가득 풀어넣었다.

약에 취해 잠이 든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희철은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며칠새 야위어버린 모습에 눈물을 글썽였다.

긴 머리칼을 감기는 일이 쉽지않아 애를 먹었다.

예전의 윤기있는 머리칼이 아니었다.

희철은 그녀가 쓰는 샴푸가 궁금했었다.

그녀의 샴푸를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샴푸뚜껑을 열자마자 퍼져오는 은은한 향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샴푸냄새 좋지?"

 

그녀는 욕조에 기대앉으며 물었다.

 

"나도 이 샴푸 쓰면 안될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도 감기 걸리겠다!"

"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

 

온몸으로 그녀의 향기를 느끼는듯 했다.

그녀의 머리결에서 느껴지던 그 은은함이 머리칼 한올한올에 전해지고 있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그의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난 기분이 상쾌했다.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감기에 좋은 대추차를 정성스럽게 컵에 담았다.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대추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그녀가 말했다.

 

"!이제야 살것 같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며 속삭였다.

 

"다시는 아프지마!"

"네가 몸이 아프면 난 마음이 아픈거야!"

"알았어!"

 

그녀는 그의 품에 안기며 입맞춤을 했다.

 

"나 배고파!"

 

그는 죽을 끓이려고 쌀을 찾았다.

 

"쌀 어디 있어?"

 

그녀는 몸을 일으켜 쌀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식탁앞에 문 열면 있어!"

 

쌀을 꺼내 냄비에 담았다.

깨끗이 씻어 불려놓고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냈다.

다행히도 여러가지 채소가 있어 영양죽을 끓일 수 있었다.

그녀는 육식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냉장고는 언제나 풀밭이었다.

특히 미니 파프리카를 아주 좋아했다.

여러가지 색깔의 파프리카를 잘게 썰어놓았다.

노란색 당근과 보라색 당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근이 노란색,보라색도 있어?"

 

놀란 목소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근이 원래 그런 색깔인데 둘이 결혼해서 주황색이 된거래!"

 

그녀는 침대에 기대어 요리하는 그의 모습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라색 감자를 집어들고는 한참동안 살펴보았다.

 

"감자가 보라색도 있어?"

 

바라볼수록 신기했다.

 

그 감자는 그냥 먹어도 되는거야!"

 

그녀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한입 베어 물었다.

제법 먹을만했다.

입안 가득 감자의 달콤한 향이 감돌았다.

 

"이 감자로 스프 만들면 맛있겠다!"

 

"죽도 먹고 스프도 먹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힘내야지!"

 

보라색 감자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었다.

냄비에 감자를 담고 가스렌지에 불을 켰다.

감자가 익는동안 채소를 잘게 다져 놓았다.

오색찬란한 다진 채소들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달구어진 후라이펜에 참기름을 두르고 쌀을 볶았다.

다져진 채소들을 볶아진 쌀과 함께 살짝 볶은후 물을 부었다.

참기름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왔다.

 

'요즈음 참기름이 가짜가 많던데!"

"이거 진짜 맞아?"

 

그는 참기름병을 들어올리며 짖궂은 질문을 했다.

 

"그거 유기농에서 비싸게 산거거든!"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게 진짜는 진짠가 보다!"

 

손가락으로 참기름을 찍어 먹어보며 그가 말했다.

냄비의 죽이 다 끓어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풍겨왔다.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가스렌지불을 껐다.

먹음직스런 죽을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희서를 부축해 의자에 조심스레 앉히고 숫가락을 쥐어주었다.

야채죽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녀는 희철의 정성에 감동을 받아 목이 메어왔다.

미안한 마음에 도저히 죽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희철의 정성이 가득 묻어나는 죽을 억지로 다 먹으려 애를 썼다.

 

"고마워!"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야!"

"감자스프도 맛있게 끓여줄께!"

"맛있게 먹을 준비하고 잇을게!"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감자가 다 익자 불을 끄고 양푼에 옮겨 담았다.

주걱으로 삶은 감자를 곱게 으깼다.

 

"익기전에 색깔이 예뻐보였는데 익으니까 우중충해 보인다!"

"사람도 나이 먹으면 이렇게 우중충해 보이는데...!"

"감자도 사람 닮았나봐!"

 

그는 으깬 감자를 그릇에 담으며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다 먹은 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꼭 내 인생같아!"

"네 인생이 어때서?"

"나이들수록 초라해지는게 딱 내 지금 모습이잖아!"

"아니야!넌 나이들수록 더 아름다워 보여!"

"그건 오빠생각이고..."

"알았어!"

"스프 먹고 더 초라해보일라!!

'내가 이 스프 다 먹을게!"

 

희철은 냄비에 으깬 감자를 볶으며 투덜거렸다.

 

"냉장고에 우유 있지?"

"열어봐!"

 

냉장고를 열자 플라스틱 우유병이 눈에 띄었다.

냄비에 우유를 붓고 주걱으로 저으며 그가 말했다.

 

"나 혼자 먹을거니까 맛있게 끓여야지!"

"그래 다 먹어라!"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스프는 옅은 보라색을 띠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릇에 담아 그녀의 침대맡에 가지고 갔다.

 

"많이 먹고 힘내야 나랑 또 싸우지!"

 

그녀에게 스푼을 쥐어주며 말했다.

그녀는 못이긴 척 스프를 한숟가락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감자와 우유의 향연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정말 맛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돼!"

 

희철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젖은 낙엽이 슬프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우리 인생은 아직 젖은 낙엽은 아니겠지?"

 

그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머릿속을 스쳐가는 복잡한 생각들에 한숨이 베어나왔다.

 

"오랫동안 생각해왔던건데..."

"복고풍 분식점 어떨까?"

"복고풍 분식점?"

우리 학창시절에 인기있었던 디제이 있는 분식집 있잖아!"

 

희서는 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요즈음 다시 복고풍으로 돌아가고 있잖아!"

"레코드 음악이 그리워지고 말이야!"

"가게 이름을 복고풍 라디오로 하는게 어떨까?"

 

희서는 다이어리와 볼펜을 식탁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메뉴부터 정해야지!"

 

희철은 미리 준비해둔 기획안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인터넷과 떡 전문서적을 뒤지며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들이었다.

평범하게 하얀 떡보다는 웰빙시대에 맞춰 채소즙으로 색을 낸 칼라떡을 재료로 정했다.

고향선배인 상덕이 하는 방앗간에서 떡을 구입하기로 했다.

상덕은 떡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상덕을 설득하는게 쉬운건 아니었다.

단가가 문제였다.

 

"요즈음 쌀값이 비싸서 밀가루로 만드는 판에..."

"누가 국산쌀에 유기농 채소로 떡을 만들어?"

 

상덕은 답답한 생각에 담배를 입에 물고 투덜거렸다.

 

"아무리 웰빙시대고 건강식만 찾는다고 하지만..."

"단가가 너무 비싸봐라!"

"누가 얼씨구나 하고 사먹겠어?"

"너처럼 그렇게 고급재료만 쓰면 그게 금볶이지,떡볶이냐?"

"희철아!장사란게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야!'

"세상 물정 몰라도 너무 모른다!"

상덕은 세상물정 모르는 희철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리 웰빙,웰빙 외쳐대도 비싸면 안사먹는거야!"

"생각해봐라!"

"너같으면 떡볶이를 몸에 좋다고 비싼 돈주고 사먹겠니?"

"내 아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사주지!"

"그건 네 생각이고.."

"아무리 아이 건강에 좋다고 해도 쉽게 지갑을 못여는거야!"

"차라리 그 돈주고 과일을 사먹고 말지!"

"채소값이 비싸서 반찬으로도 안사먹는 세상이야1"

"떡을 예쁘게 색깔내는건 좋아!"

"꼭 채소즙,그것도 비싼 유기농즙으로 해야되냐 이거지!"

"!꼭 해야돼!"

"그냥 식용색소로 해!"

"아니!난 절대로 그렇게 못해!"

희철은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나와버렸다.

계속 말다툼을 하다가는 상덕에게 주먹을 날릴것 같았다.

무작정 걸어 한강변에 다달았다.

탁 트인 한강변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상덕의 말이 틀린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에 목을 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희서와의 사랑을 지키기위해 어렵게 선택한 길이었다.

강변에 걸터앉아 캔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사람은 자기자신인걸 잊은채 상덕에게 화만 낸걸 후회했다.

상덕의 말대로 너무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것인가?

포기라는 단어와 희서의 웃는 얼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기대에 부푼 그녀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핸드폰을 열고 상덕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술 한 잔 할래?"

 

술잔만 오갈뿐 한참동안 어색한 분위기만 흐르고 있었다.

술병을 한 병 다 비우고 나서야 상덕이 말문을 열었다.

 

"가게자리는 구했냐?"

"아니!아직!"

"어디에서 할건데?"

"알아봐야지!"

"돈은 준비했어?"

"...................................?

"모아둔 돈 정리해봐야지!"

 

상덕은 복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너 요즈음 가게세가 얼마나 비싼줄 알아/"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너네들 엄연한 성인이야!"

"아줌마!여기 소주 박스로 가져오세요!"

"!미쳤어?"

"그래!너때문에 미치다 못해 돌아버리겠다!"

 

상덕은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방앗간 건물 지하에 있던 가게자리가 비었거든!"

"일단 거기서 가게 시작해라!"

"가게세는 얼마 받을건데?"

"일단 내 말 들어!"

"네 말대로 채소즙을 내서 웰빙떡 만들어보자!"

 

희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100프로 유기농은 힘들어!"

"타산이 안맞아!"

"가게세는 자리잡을때까지 안받을게!"

 

상덕은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그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