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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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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


BY 낸시 2017-06-17

내 삶의 피난처 

"내년에는 저기에 부겐빌레아를 더 심어야겠다."

부겐빌레아의 화려한 꽃을 보면서 딱 내 꽃밭에 어울린다 싶어 그렇게 말했다.

"내년이 있기나 할까?"...에드워드 말은 고전 중인 식당이 내년까지 지탱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에드워드는 식당에서 일하던 중국인 2세다.

우리가 휴스턴 살 때, 같은 골목에 살았고 우리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 아들보다 더 듬직하게 날 도와주던 녀석이어서 식당 운영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에드워드 말이 섭섭하고 마음 아프다.

식당이 문을 열기 전부터 꽃밭 일을 도와주던 이쁜 녀석인데 이 녀석도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식당 운영이 힘들어 아들 같던 에드워드도 보내고 딸 같던 제니퍼도 보냈다.

남은 것은 남편과 나 그리고 부엌 일을 도와주는 과테말라에서 온 호세 세사람 뿐이다.

남편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힘들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생에 죄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 식당이라고 하였다.

그 만큼 식당 일이 싫다는 뜻이다.

자기가 설겆이를 다 했다고 분노한다.

식당하는 사람이 설겆이야 당연한 일인데 남편에게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손님이 없으면 이러다 망한다고 난리, 많으면 힘들다고 난리다.

그런 남편이 힘들어 손님이 없으면 밖으로 나돌 수 밖에 없다.

밖에 나가  꽃과 나무를 보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답답하던 가슴이 뚫리는 듯 싶고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꽃이 밥 먹여 주냐?"..

밖으로 나도는 내가 못마땅해 남편이 소리지르거나 말거나다.

 

"당신 정말 식당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어? 더 늦기 전에 우리 포기하자"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남편이 하던 말이다.

식당이 잘될 것이란 확신이 있긴 했지만 나라고 어찌 이런 말에 흔들리지 않으랴...

듣고 있으면 나도 그만 식당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런 남편을 피해 식당에 일이 없어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식당으로 간 것이 아니고 식당 주변에 있는 꽃밭으로 피난 간 것이다.

새벽 이슬에 촉촉히 젖은 꽃과 나무가 날 반겨준다.

'힘들지...어서 와...'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새로 핀 꽃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잡초도 뽑고 주변의 휴지도 줍고 그러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이 솟았다.

 

식당이 문을 닫는 날이었지만 일요일에도 갔다.

남편은 되지도 않는 식당을 일요일까지 쫒아다닌다고 화를 내었다. 

일하러 간 것이 아니고 피난 간 것임을 그는 꿈에도 모르는 모양이다.

당시, 남편은 분노와 좌절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잘 나가던 공직생활을 접고 밑바닥 이민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짐작한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남편이 이해되기보다 야속하고 힘들어 달아나고 싶었다.

하루도 수십번 이혼을 꿈꾸었다.

어쩌면 이혼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꽃밭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힘들어 달아나고 싶을 때마다 갈 곳이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꽃밭은 나에게 피난처였고 도피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