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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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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꽃밭


BY 낸시 2017-06-10

남편은 힘든 일을 하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지친다.

폐암수술을 두번 했고, 두번째 수술에서는 부신까지 제거하는 바람에 몸에 부담이 더욱 커진 듯 하다.

그런 남편이  날더러 꽃 심으라고 땡볕에 하루종일 땅을 파고 잡초를 골라내었다.

햇볕에 익은 벌건 얼굴로 엉그적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니 그 바보스러움이 밉다.

살살하지...무슨 일을 그리 지치도록 한단 말인지...ㅉㅉ

한편,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으라고 해준 일이니 고맙기도 하다.

 

십오년 전, 남편은 폐결핵 치료를 거부하는 날 꼬드겨 수술을 받게하려고 산을 하나 사주마 약속했다.

치료를 거부하던 내가 산 하나 가득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이라면  한번 더 살아볼 생각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선선히 약속하는 남편의 약속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빈말이라도 고마웠다.

어찌되었든 수술을 받았고, 나는 남은 삶을 꽃과 나무에 미쳐 살기로 했다.

 

그 후 이민을 왔고, 우여곡절을 겪어 식당을 시작했다.

꽃과 나무에 미쳐 살기로 했으니 식당 자리도 꽃과 나무를 심을 공간이 있나 없나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노숙자들이 득시글거려 버려진 땅 취급을 받던 곳이 내 눈에는 꽃과 나무를 심을 공간으로 보였다.

그런 곳에 식당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남편은 반대였다.

남편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식당을 열었다.

예상대로 손님은 별로 없고  내가 심은 꽃과 나무를 캐다 파는 노숙자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일은 뒷전이고 날마다 꽃밭에 매달려 사는 날보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꽃이 밥 먹여 주냐?"

 

꽃과 나무에 미친 여자도 미친 여자다.

미쳤으니 별 짓을 다 한다.

꽃과 나무를 지키기 위해 엉엉 울기도 하고 노숙자들과 몸싸움도 불사한다.

모두들 안된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노숙자들과 술주정뱅이들로 부터 꽃과 나무를 지켜내었다.

그렇게 만든 꽃밭으로 인해 버려진 땅이 도심의 오아시스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덩달아 식당 인기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지금 그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 녀석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번 돈으로 여기저기 선심도 쓰고 집도 두 채나 샀다.

"거 봐, 꽃이 밥 먹여 준다."

내 말에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번째 식당 자리를 고를 때도 꽃과 나무를 심을 공간이 있나 없나가 기준이 되었다.

창고 비슷한 건물 주위로 꽃과 나무를 심을 만한 공간이 보이는 장소가 나왔다.

유동인구도 많지 않고 식당하기엔 그닥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작정하고 미쳤으니, 남들이 좋은 위치가 아니라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

꽃과 나무를 심을 공간이 있으면 되었지...유동인구가 있든 말든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 미쳤지, 달리 미쳤나...

이번에는 남편도 내 선택에 이의가 없다.

위치가 아니고 꽃이 밥 먹여 주는 것을 경험했으니 남편도 이제는 내 선택을 믿어준다.

 

식당이 문을 열었고 차츰 꽃밭도 모양을 갖추어간다.

꽃밭을 할 땅이 주위에 널렸으니 나는 행복하다.

문제는 남편이 지나치게 열심이다.

제 몸 생각해가며 살살할 것이지, 무엇을 하든 적당히 할 줄을 모른다.

하루 종일 텍사스 땡볕에 벌개진 얼굴로  땀 범벅이 되어 엉그적거리는 것을 보면 내 속이 탄다.

내 아무리 꽃과 나무에 미쳐보기로 작정을 했다지만 그것은 반갑지 않다.

'에이구...이 웬수야, 아프다 하지 말고 제발 살살해라.'

이 웬수 때문에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할런지...ㅉㅉ

어째 나보다 더 미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