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야 부자야
저절로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부지런한 이들이 들으면 웃겠다. 아침 일곱 시가 내게는 엄청 이른 시간이니까. 아침밥을 찾는 이도 없거니와 이른 출근을 해야 할 사람도 없으니까. 아홉시 예약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게다가 혈액검사라 하니 금식을 해야 하지 않는가.
낮에는 멀쩡하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요술에 걸린 듯 열이 나고 입에서 단내가 나는 건 무슨 조화인고. 하루 이틀이면 그냥 봐 줄만도 하다마는 제법 오랜 날의 일상이다. 이렇다 하니 병원에서 가장 기본적인 혈액검사를 하자 해서 날 잡아 금식을 하고 줄행랑.
늑장을 부리다가 아차차 예약 시간이 빠듯하겠다. 다른 날 같으면 영감이 따라나설 것이나 기척이 없다. 바람처럼 거실을 가로지르는 마누라를 시선으로 뒤따르며 어디 가느냐는 눈치다. 며칠 전 일렀으나 까서 잡수(?)셨나보다. 그럴라치면 차라리 어디 가냐고 물어나 보시지.
“나, 이러구 가도 되나?”수면 츄리닝을 입고 있다가, 따라 나서도 용서가 되겠느냐는 소리다.
“뜸 들면 밥이나 자셔요.”무척 미안한 모양이다. 그렇긴 하겠지. 이제 생각이 난 모양이니까. 병원을 혼자 가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어제 저녁을 일찍 해 치우고 아침도 금식을 했더니 기운이 없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선구이’메뉴가 걸린 식당이 눈에 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점심시각이라면 혼자라도 들어가겠다. 그러나 아침 시각이니 혼자 식사를 청하자면 집 나온 여편네 같지 않겠는가.
병원에서 집까지가 차를 탈만한 거리가 아니어서 타달타달 걷는다. 차라리 남편의 아침밥에 내 밥도 얹어 익힐 것을. 좀 식으면 어떨라구. 아니, 좀 곰살맞은 양반이라서 시간에 맞춰 고실고실 밥을 좀 익혀놓으면 어떨까. 피~. 바랠 걸 바래야지. 젠~장.
배가 고프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이 거리엔 빵집도 하나 없네. 나, 길거리에서라도 아구아구 뜯어먹을 용기도 있는데.”
‘가방에 잘 넣어 두던 사탕도 오늘따라 하나도 없네.’
와~. 가진 거 없어서 배가 고팠더라면 눈물 났겠네.
참 재미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으나 배를 채우고 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역시 배는 부르고 볼 일이로구먼. 그러게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잖는가.
보림아~!
오늘 할미가 좋은 경험 했다니께. 금식 할 때는 가방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여~.
이것도 막내 근성인갑다. 늘 누군가 챙겨줬으니께. 니네 엄마가, 니네 고모들이, ㅋㅋㅋ.
프로리다의 저녁노을(손녀딸아이의 졸업식에 다녀오는 길에 너무 멋져서 달리는 차 속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