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드디어 탈이 났다. 죽을 만큼, 아니 죽지 않을 만큼. 무슨 일에든 전조현상(前兆現狀)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몹시 앓고 싶어서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 것일까.
아니면 맘음이 아프다 못해 몸이 아프고 만 것일까. 그렇다면 몸은 마음에 지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몸은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左之右之) 된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이렇든 저렇든 나는 보기 좋게 넉다운이 되어 사흘을 앓고 일어났다. 정신 없이 앓는 동안 딸들이 교대로 전화를 해서 공연한 며느님만 바쁘게 만들었구먼.
올 수는 없고 속이 타니 가까이에 사는 올케만 닦달을 할 수밖에.
“이 다음엔 어머님이 진지 챙기시기 힘드시면 저에게 직접 전화 주세요. 멀리 있는 고모들한테 어머님 아프시다는 연락 듣는 건 좀 그래요.”
이런 이런. 내가 아프다고 미국에다 전화를 했나? 저들이 전화를 해서 아픈 걸 알았지. 그렇다 하면 그렇게 들린다마는 아직 누가 챙기든 챙겨 먹을 만은 하걸랑.
그러더라 저러더라 하면 또 잘못 이해해서 사단이 날까봐 것도 못할 짓일세. 제일 상책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수밖에.
목구멍에서 단 내가 자꾸만 밀고 올라온다. 아무래도 병원엘 행차하셔야(?) 할 모양이다. 웬만해서는 병원 출입은 하지 않는데 말이지.
병원문을 나서는데 아직 여드름자국이 선명한 청년과 꽃띠아가씨 같은 부부가 해산을 하고 퇴원을 하는 모양이다. 엄마는 조그만 아가를 돌돌 말아 안고 에레베타를 기다린다.
양손에 짐보따리를 들고 얼굴은 보쌈을 한 아가의 얼굴 위에 파묻고 에레베타를 기다린다.‘누군가 이 아기 아빠냐?’ 물어주기를 바라는 듯한 표정이다.
“딸이유? 아들이유?”
“딸이에요”예뻐 죽겠다는 듯 웃음이 가득 얼굴에 핀다.
까짓 내친 김에,
“이뻐죽겠지.”
“이뻐서 눈물이 나려구해요.”
“축하해요. 잘 길러요.”
젊은 부부는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개선장군(凱旋將軍)처럼 에레베타문을 나선다. 나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손가락으로 마음에 쓴다.
“나도 그랬지 옛날에.”
병원 문을 나서니 찬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나, 아직 몸이 아픈가 보다. 마음이 아픈 가?
<버크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