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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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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BY 만석 2017-04-01

봄은 온다

 

아침마다 대문을 열면 버릇처럼 담쟁이의 눈을 찾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담쟁이는 눈을 틔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눈에 띄는 물오른 담쟁이의 눈. 그런데 올해는 내가 바빠서 담쟁이의 눈을 찾는다. 계절이 더디 오는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하루하루 할 일은 줄어들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겠다. 이층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은 공연히, 정말 공연히 마음이 바쁘다.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일거리를 싸들고 밀고 들어서는 손님도 끊긴지 오래다. 그런데도 눈만 뜨면 아래층이 궁금하다.

 

역시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고작해야 하루에 서너 명의 손님을 맞지만, 일거리와는 거리가 먼 그녀들이다. 수십 년 단골로 살아오는 동안 친구가 된 사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말그대로 친구.

 

만두를 싸들고 오기도 하고 붕어빵을 공수하기도 한다. 매일 얻어먹는 커피가 부담스럽다며 커피를 사 들고 들어서기도 하지만, 그나마 들고 오기가 힘에 부치는 나이들. 나도 저렇게 늙었거니 생각하며 반가운 얼굴로 그녀들을 맞는다.

 

그나마 부부가 같이 사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나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지만,

아구야~. 여기도 과부댁이 많네.”하는 소리에 한 바탕 웃고 자리를 권한다.

가는 데마다 과부만 득시글 득시글 하다니께.” 그래서 그녀들은 더욱 한가롭다.

 

이댁 주인장은 참 좋은 기술을 가졌단 말씀이야. 나도 진즉 바느질이나 배울걸 그랬어.”

허허. 팔자타령을 하던 젊은 날의 힘겨움이 이렇게 각광을 받을 줄이야. 사실은 나도 요새로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갖기는 한다는 말씀이야.

 

젊어서는 남들처럼 놀러도 다니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찾아다닐 수 없음을 얼마나 한탄했던고. 특히 남들은 다 하는 줄만 알았던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팔자타령도 했지 않았나 말이지. 철늦은 만학으로 학사모를 쓰면서도 진즉에 얻지 못한 영광을 한탄하곤 했지.

 

남도 아닌 내가 나를 늘 양장쟁이라고 폄하했던 젊은 날. 이제 저물어가는 나이에 들었으니 좀 올려줘도 족할 듯. 디자이너라 할까? 스타일리스트는 어때? 하하하. 뭐라 붙인들 나무랄 사람도 없거니와 과히 동떨어진 직함은 아니지.

 

이젠 가물에 콩나 듯 맞는 손님은 까탈을 부릴 만하지도 않다. 수십 년 맞춤옷에 길들여진 그녀들이고 수십 년쩨 내 솜씨에 젖은 그녀들이니 잘 맞지 않는다고 타박을 할 리도 없다. 재촉을 하는 법도 없고 이젠 한두 푼을 깍자는 이들도 없다.

 

재촉을 하는 법도 없고 다만 새옷을 입는다는 즐거움이면 족한 그녀들이 아닌가.

또 새 걸 하나 더 입어보네.”하며 먼저 간 친구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 누가 그랬지. ‘누가 뭐라 해도 더 오래 사는 사람이 승자라고.

 

사실 나도 그렇다.

이 나이 먹도록 손을 놀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일부러 손가락 운동을 하고 손목운동도 하라는데, 이만하면 대견하지 않은가. 나도 이젠 주머니의 잔돈을 터는 녀석도 없으니 애써서 많이 긁어 담겠다고 극성을 부릴 이유도 없지.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한 날이면 주머니가 여유로와 좋고 그래서 나는 으스대고. 머리 아픈 일은 만들지도 말고 생각지도 않고 허허실실 사는 것도 괜찮은 말년이다. 남들만큼 가진 게 없다고 버둥거릴 필요도 없으니 이 아니 좋은가.

 

그러고 보니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 만석이의 생()도 괜찮구먼. 돈걱정이 고민 중에 가장 작은 고민이라지. 남들이야 내 삶을 어떻게 보든지 나는 오늘부터 행복하려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을 기다리는 건 욕심이 아니겠지.

 

보림아~.

봄을 기다리는 건 고운 맘 아니겄어?

할미는 이자 좋은 생각만 힘시롱 살겨~^^

                       봄은 온다

                                                                          올드알렉산드리아 항에서